8.  JAIPUR   '99. 1. 13 - 1. 15

     타르사막의 입구                                      

   자이프르는 사막 지방으로 들어서는 첫 도시이다.
그러나 우리는 푸슈카르에서 라자스탄주의 서쪽 끝인 자이살메르에 먼저 들어간 후 나오는 길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입구로 나온 셈이 되었다.  사막의 분위기는 자이프르에서부터 조금씩 시작해 조드프르에서 더 많이 느끼게 되고 자이살메르에 이르면 완전한 사막이 되어 버린다.  
  자이프르의 매력은 분홍색 도시로 유명한 옛 시가지로, 도시 전체가 오래된 건물들로 분홍색을 띠고 있다.  강력했던 무굴 황제와의 혼인을 통한 특별관계를 맺음으로 해서 그에 따른 혜택과 평화를 누렸던 암베르 성의 후예 자이 싱 2세가 무굴 제국이 무너져가던 무렵인 1727년 말, 본거지를 이곳으로 옮기며 성을 쌓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따서 자이프르라고 불려진 것이다.

  나도 몸살

  11시경 자이프르에 도착하자 아빠는 배낭을 짊어진 후 언니의 배낭을 앞에 걸머지고 떼거리로 몰려드는 릭샤꾼들을 제쳐가며 역에서 가까운 스와가탐 호텔로 곧바로 갔다. 이 호텔은 잔디 깔린 넓은 정원이 갖춰져 있는 아주 깨끗한 곳이다.  
  방을 정한 우리는 담요와 침낭부터 펼쳐 깔고 언니를 눕혔다.  화장실 바깥 쪽 창문에는 비둘기가 둥지를 틀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호젓하고 마음 편하게 구구구 하며 노래도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니의 건강 상태에 따라 여행을 취소하고 델리로 가서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나는 여행이 취소되고 집으로 가게 될까봐 안타까웠다. 언니가 내일까지 나아서 안 아프면 계속 다니기로 했는데, 제발 한시라도 빨리 나아져서 여행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아빠와 나는 언니를 누여둔 채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마땅한 먹을 거리가 없을까 싶어 기차 역 부근으로 나와 기웃거려 보았으나 우리 입에 맞는 음식이 전혀 없어서 빵과 과일, 과일 주스 등을 사 가지고 들어왔다. 계속 잠만 자고 있는 언니를 깨워서 함께 요기를 했다. 언니는 안정을 취해서 그런지 상태가 조금 좋아진 것 같다.

  저녁무렵 아빠와 나는 버스 터미널과 구 시가 쪽으로 한참을 구경 삼아 걸어 나갔다. 여기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약방과 장거리 전화도 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언니가 걱정된 아빠는 여기서 나중에 진찰 받고 약을 맞춰 구입할 수 있느냐고 물어 보기도 하고 몇 군데 호텔들의 상태도 알아보았다.   
  우리가 머문 스와가탐 호텔은 배낭 여행자들이 없고, 대체로 형편이 괜찮은 인도 사람들만 머물고 있어 조용하고 심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변에 외국인들을 위한 마땅한 식당이 없다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아빠와 나는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걱정되던 언니의 건강은 많이 좋아 진 것 같아 오늘은 푹 쉬고 내일 핑크 빛 구 시가지와 암베르 성에 가기로 했다.  자정이 되어서도 커다란 음악소리가 밖에서 계속 들려온다. 무슨 축제가 열리고 있는가 싶어서 아빠는 한참동안 나가서 돌아다녀 보았으나 축제 같은 것은 없고 밤늦은 시간까지 스피커에서 음악만 계속 광기 들린 듯 큰 소리로 틀어 놓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다음 날 새벽, 어제 언니와 똑같은 증세가 나에게 일어나고야 말았다.
  언니는 생생해지고, 내가 비실비실 현기증과 함께 구토가 나는 것이다.  어제 새벽보다는 덜 놀랬지만 역시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인도에 오면 한번씩 몸살이 난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이번은 모기향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인을 좀더 좁게 생각해 볼 수가 있었다. 역시 긴 여행에서 누적되어오는 피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는 심심하더라도 가능한 끈질기게 누워 안정을 취하기로 했다.  아빠는 우리 수준에 맞추느라 쉬엄쉬엄 천천히 기어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아직 초등학교 여학생인 우리들에게는 역시 무리한 여정인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아주 늦게늦게 일어났다.

  암베르 성

  진경이는 몸이 아파도 나처럼 쳐지는 편이 아니고 숙소에만 있으면 갑갑하기 때문에 일단 나가서 암베르 성에 다녀오기로 했다.  
  자이프르 시내에서 11Km 떨어져 있는 바위언덕 위의 거대한 성이 있는 곳에 아침해가 뜨겁게 내리 쪼일 즈음 도착하였다. 16세기 건축당시에는 이곳이 영화를 누리던 왕국의 수도였다.
  암베르 성을 가운데 두고 양쪽의 높은 산언덕에는 성벽이 둘러져 있어 몸만 성하다면 올라 갔다 오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성 입구  아래쪽에는 호수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정자가 세워져 있는 그늘에서  사람들이 오가며 물고기에게 모이들을 뿌려주고 있다.
 

  한 굽이 돌아 비탈길을 오르려 하는데, 인도 풍물이 소개되는 책에서 자주 보는, 코브라 뱀을 놀리며 피리를 부는 사람이 나무 그늘에 앉아 우리를 보고 손을 저어 부르며, 빈이라고 불리는 엄청 요란한 요술쟁이 피리를 불어댄다. 이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요술학교에서 전문적으로 학습을 해야 한다.
  코브라 뒷 머리모습은 그 무늬가 안경을 쓰고 웃고 있는 사람 얼굴 모습이어서 흠칫 했다. 우리는 기분이 별로여서 그냥 지나쳐 갔다. 비탈길에서  진경이의 몸이 쳐지기 시작하자 아빠는 배낭을 앞으로 맨 후, 진경이를 뒤에 업고 성에 올랐는데, 내일은 아빠가 아플 차례인가 보다고 농담 삼아 얘기를 했다.  
 

  올라가는 길에는 커다란 코끼리들이 사람들을 태우고 오르내리고 있다. 아빠가 코끼리를 타고 올라갈까 하고 물었지만 우리는 몸도 안 좋고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아 걸어 오르기로 했다.
  성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정원이 나온다. 그곳에는 관광상품을 파는 사람들과 코끼리 그리고 짚차 운전사들이 손님들을 찾고 있다. 저쪽 한편으로 레스토랑이라고 쓰여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휴업 중이어서 입에 맞는, 맵지 않은 음식을 먹어보려고 했던 기대가 무너지고 말았다.

  무굴 황제 아크바르의 참모로 입신하여 부와 세력을 쥔 만 싱이 선대로부터의 터전인 이곳 암베르에 대규모의 성을 짓기 시작한 것은 1592년이었다. 그러나 이 성이 오늘날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규모가 된 것은 그의 뒤를 이은 자이 싱 1세에 의해서 인데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인 것으로 손꼽힌다.
  선대처럼 탁월한 전략가이자 능란한 처세술을 겸비하였던 자이 싱 1세는 11세에 집권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13세에 3천 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터에 나섰다 한다.
  무굴 제국하의 힌두 왕조가 이같이 웅장한 규모의 요새인 암베르 성을 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이 싱 1세의 탁월한 처세술 덕분이라 한다.
  궁전입구를 따라 오르면 넓은 마당 왼편에 공공 접견실이 있다. 한때 자항기르가 탐색을 위해 보낸 사자를 맞게 된 자이 싱 1세는 화려하게 장식된 공공 접견실의 곳곳을 덧칠하여 눈가림을 하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단지 수많은 돌기둥들이 늘어선 모습만 보일 뿐이다.

  이곳 넓은 마당을 지나면 1640년경에 건축된 가네쉬 폴(코끼리 문)이 나온다. 화려한 꽃무늬의 모자이크 장식들이 매우 섬세하고 생생해서 마치 아름다운 무늬들이 사진 모델료를 달라는 듯 우리들 눈앞에 몰려들었다.  
  가네쉬 폴 위에 있는 옥상으로 올라가 돌로 만든 섬세한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니 궁전 안의 넓은 마당과 공공 접견실이 내려다보였다. 한 관광객 일행이 몰려와서 문 입구의 섬세하게 꾸며진 장식들을 보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소리가 한국 말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더 놀다가 사람들 일행이 이곳으로 오면, 모르는 척 지나가면서 노래를 한번 불러 보기로 했다.「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하는 한국사람이라면 유치원 아이들까지 아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보니 사람들은 들어오지도 않고 사진을 찍은 후 가이드를 따라 그냥 가버리는 것이다. 궁전 안의 다른 아름다운 것들은 보지도 않은 채…. 우리는 의아했으나 바쁜 사람들은 저런 식으로도 보고 가는구나 하며 우리의 심심풀이 땅콩 같은 계획을 접어야 했다. 아마 델리에서 자이프르, 아그라로 이어지는 1박2일 코스의 관광인 것 같다.      
 

  가네쉬 폴을 지나면 田자 모양으로 꾸며진 무굴 양식의 정원이 있는 궁전 마당이 나온다.
 정원의 오른편의 건물은 안쪽에 수로를 만들어 차가운 물이 흘러 들어오게 하여 냉방 효과를 내게 한「환락의 장소」라는 곳이 있는데, 지금은 물 같은 것은 흐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아 더위를 잊을 정도는 되었다. 어두침침한 그늘인 안에서 바라보는 정원은 밝고 강렬한 햇빛이 눈부실 정도로 내려 쪼여, 우리가 있는 그늘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곳 정원에는 청록의 나뭇잎과 빨갛고 노란 꽃들이 아주 정열적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정원의 왼쪽 궁전은「승리의 장소」로 내부 장식이 아름답고 창가에서의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또한 좋다. 이곳의 시쉬마할(거울의 방)은 별로 크지 않는 공간이지만 온통 벽이 작은 거울들에 의한 기하학적 모양의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다. 그곳에서 방문을 닫고 불을 켜면 마치 밤하늘처럼 수없이 많은 빛들이 반짝이는 광경을 즐길 수 있다 한다.
 

  환락의 장소 위층 군인들이 머물렀다는 조용한 방들이 있는 그늘진 곳에 걸터앉아 준비해온 간식거리를 먹으며 쉬었다.  우리 나라는 지금쯤 추위가 한참일 텐데 여기는 사막의 뜨거운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 쪼이고 있다. 진경이는 아픈 몸이라 기운이 없어 쳐지는지 자꾸 주저앉는다.   

  성을 나와 짚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기사들은 시내로는 가지 않고 성에만 오르내린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보고 차 안쪽의 그늘로 들어와서 시내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라고 고마운 인정을 베풀기도 했다.

  핑크시티와 바람의 궁전

  무굴과 제휴했던 대표적인 세력인 암베르에 근거를 두었던 카츠츠와 왕조는 여동생을 하마윤의 아들 아크바르에게 시집 보냈다. 그녀는 나중에 자항기르를 낳는다. 이 왕조는 결혼을 굳게 다지는 의미로 아들 만 싱을 아크바르의 신하로도 바쳤는데, 만 싱은 라지푸트 무사족 출신의 사령관답게 출중한 군사능력을 발휘해 아크바르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무굴 제국 안에서도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되었다.
  이것을 기회로 라자스탄 일대에서는 중간 정도의 세력에 그쳤던 카츠츠와 세력은 라자스탄 내에서 강대한 세력으로 떠오르게 되고 암베르에서 자이프르로 그 본거지를 옮기는 등 자이 싱 2세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이들은 오늘날까지 라지푸트를 대표하는 세력이 되었다.

  자이프르 성안 건물들의 벽이 온통 분홍색으로 칠해지기 시작한 것은 1876년 웨일즈 왕자(후의 에드워드 7세)의 이곳 방문을 기념하여 라지프트들에 의해서 칠해졌다. 전통적으로 환영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던 분홍색을 온 시가지에 칠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지금은 「핑크시티」로서의 전통으로 유지되고 있다.

  1799년 지어진 하와마할은 아주 낭만적인 바람의 궁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 궁전은 정면의 모양세가 삼각형 모양으로, 시원한 바람이 궁전 안 구석까지 미치도록 넓이에 비해 폭이 좁은 형태로 지어져 있는 5층 건축물이다.
  궁전 벽에 돌로 만들어진 격자모양으로 나와있는 창과 발코니들은 더운 사막지대에서 최대한 바람을 많이 끌어들이게 설계되었고, 또한 이 발코니 창을 통하여 궁녀들은 성안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고 시가지에서 벌어지는 축제나 행진 등을 구경했다 한다.
  이 궁전은 여행 책들에서 낙타가 유유히 궁전 앞을 지나가는 등의 풍경으로 소개되어 아주 흥미롭게 보아왔던 것이어서, 머나먼 이국 땅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을 또 다른 시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진경이가 아픈 상태여서 들어가지 않고 길 맞은편에서 감상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인도 아저씨가 자꾸 우리 뒤에 있는 건물로 올라가서 보면 더욱 전망이 좋다고 올라가서 보기를 권했다. 고맙기는 했지만 일단 둘러보는 것으로 관광을 끝내고 끼니부터 해결하고 쉬어야 했다. 관광거리는 많으나 몸도 아프고 제대로 입에 맞는 식사를 못했기 때문이다.
  길에서 한 어린 꼬마가 진경이가 업혀 가는 모습을 보고 왠 저리 큰 아이가 다 업혀가냐 하듯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기부모에게 보라는 뜻으로 손짓하기도 한다.   
 

  한참을 걸어가다 배낭을 맨 청년을 만나 이 가까운 곳에 레스토랑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 청년은 조금 생각하듯 하더니 앞 쪽으로 100m 정도 더 가면 있을 거라고 해서 희망을 갖고 걸어갔는데 가는 도중에도 혹시 괜찮은 식당이 또 있나 두리번거리면서 갔다. 정말 그쯤 가니 레스토랑이 나왔다. 입구에 도달하니 마침 아까 암베르 성에서 만난, 연구차 델리에서 왔다는 교수 가족 분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사모님되시는 분은 고등학생인 외아들만 있어서 인지 우리를 예뻐해 주시며,  진경이의 상태도 염려해 주었다.
  레스토랑의 음식에 관해 물었더니 값만 비싸고 맛은 그저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가이드 되는 분도 자이프르에는 한국인에게 맞는 좋은 음식점이 없다고 한다. 그 점은 우리도 동감이었고, 나와 진경이가 번갈아 가며 몸이 아프니 여기는 오래 머무를 곳이 안 된다 싶어 다른 관광은 생략하고 가능한 빨리 떠나기로 했다.

  어쨌던 우리는 요기를 위해 식당을 들어갔다. 안은 아직 크리스마스 츄리가 장식된 채로 있었는데 잘 꾸민다고 애쓴 흔적은 보였지만 아기 자기한 감칠맛이 없는 좀 건조한 츄리 장식들이다. 그러나 다른 실내장식은 중후하며 매우 고급스럽고 실내도 크고 시원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울 만큼 배도 채우고 휴식도 한동안 취했다.
  그리고 진경이에게 많이 고마워했다. 나처럼 늘어져서 자리 깔고 누워 버렸다면 암베르 성은 물론 바람의 궁전도 못보고 자이프르를 떠났을 터인데 그래도 자꾸 가라앉는 몸으로도 자리에 눕지 않고 일어났으니 말이다.  진경아 고마워, 그리고 너무 애썼다 !  그리고 이제는 우리 아프지 말자.

  다음날 아침 창문 가의 비둘기 울음소리에 잠이 깨었다. 다행히 진경이도 상태가 좋았고 나도 개운했다. 아예 점심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해결했다. 한 개에 4조각으로 되어있는 토스트를 3개 시키니 충분히 먹는 양이 되었다. 진경이는 삶은 달걀도 시켰는데 배가 고팠는지 정말 잘 먹었다. 시간이 남아  정원 파라솔 밑에서 아그라로 가는 기차 시간이 될 때까지 휴식도 취할 겸 노닥거리고 놀았다.

  기차는 자이살메르에서부터 출발한 것인데 모랫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의자에 먼지가 뿌옇게 쌓여있다. 아빠는 쓰고 다니는 모자로 먼지를 털어서 우리를 앉게 해 주었다.
  천장에는 선풍기가 달려있었다. 마치 모기떼가 새카맣게 앉아있는 것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어 여름엔 정말 덥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8시 반이 되어가자 사람들은 기차 칸에 붙은 침대를 펼치기 시작했다. 마주보고 앉은 좌석들 위에 두 칸의 침대가 고리에 의해 벽에 붙어있다.  지금 의자가 되어 사람이 않아 있는 것은 맨 아래 침대가 되어, 한 칸 벽에 3단  침대가 마련되고 양쪽으로 전부 6개의 문 없는 침대 방이 되는 것이다. 우리도 인도 인들과 함께 침대번호에 맞춰 누워야 했다. 예정으로는 지금쯤 아그라에 도착해야 하는데, 제 멋대로 연착이 되는 것이다.  내가 맨 위 칸에 그 다음 언니, 그리고 아빠가 맨 아래 칸에 누웠다.
  위에서 목을 빼고 언니를 내려다보며 놀려보기도 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열차 안에서도 갖가지 구경거리가 있다. 「짜이짜이-」하면서 차이를 파는 아이, 삶은 달걀을 파는 사람, 아기가 울어서 마음이 안타까운 엄마, 뜨개질하는 솜씨 좋은 아줌마…. 침대 칸 위에서 구경하는 기차 안은 참 재미가 있었다. 우리는 차이를 3잔 사 마셨는데 4루피 씩 12루핀데 차이를 파는 아이는 영어를 못하고 계산도 십 이상하지 못해 10루피 만 갖고 간다. 그래서 우리는 나중에 따로 5루피를 더 주었는데 그 아이는 영문을 모르듯 받아 가는 것이다.

  맨 윗칸은 철판으로 막혔다가 천장이 되어 가는 둥근 부분엔 철망으로 되어있는데, 그곳으로 시커먼 사내아이의 손이 들어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반대편 위에도 나처럼 아이를 눕혔나 보다. 나는 그 애 손에서 머리카락을 빼 내고 자기 칸 철망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조금 있다가 또 검은 도둑고양이 같은 손이 철망을 통해서 살그머니 넘어왔다. 아까 자려고 앉아서 준비할 때 철망사이로 나를 본 모양이다. 나는 그 손을 꼬집어 줬다.  그랬더니 손이 쏙 들어갔다. 좀 잠이 들려고 하니까 또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나도 이제는 신경질이 났다.
「이 새끼가 왜 자꾸 귀찮게 하는 거야 !, 자기나라면 다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애 검지 손가락을 쥐어 잡아 꺾었다. 아픈지 꿈틀 한다. 이빨로 깨물어 줄까 하다가 손에서 냄새가 나고 더러운 것 같아서 그것은 참았다. 마침내 반대 칸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그래서 손을 놓아 줬다. 그놈은 따끔한 맛을 봤는지 그 뒤로는 검은 손이 내 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