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JODHPUR  '99. 1. 11 - 1. 13

   파란색 도시와  메헤란가르 성              

 　사고 난 유조차의 운전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차마 알 마음의 여유도 없이 끝내 우리는 정적 속에 깊이 잠겨든 조드프르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라자스탄의 수도인 자이프르에서 서쪽으로 300Km 떨어진 광대한 타르 사막에 오 백년 전 라지푸트의 마르와르 왕국의 수도로서 세워진 길이 10Km나 되는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이 도시는 신화에도 나올 만큼 아주 오래된 도시다.  AD 13세기 이래로 이 주변을 다스렸던 라소레스 왕조는 마르와르로 알려져 있던 이곳을 불멸의 사막도시로 만들려는 의욕으로 이 도시를 건설하였다.
 

  메헤란가르 성은 조드프르에서 가장 높은 바위절벽 위에 견고하게 버티고 서 있는 거대한 성으로 시계탑 쪽과는 반대편이랄 수 있는 서 남쪽 주택가 파테폴에서 쉬엄쉬엄 도시의 풍경을 구경하며 오르는 것이 성의 진가를 볼 수 있는 코스인 것 같다. 파테폴은 성의 원래 출입구였다 한다.

  비탈진 성을 오르는데 벽 모퉁이 또는 틈새마다 사람들이 끼어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소가 성안에 들어오지 않아 붉은 돌의 보도 블록이 깔린 바닥은 깨끗했으나 경사진 구석으로 생활하수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른들은 흘끔 흘끔 우리를 바라보고, 아이들은 쫄쫄 따라 다니며 카메라와 배낭 그리고 우리의 행동들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날씨가 더워 자꾸 물을 마시고 땀을 흘리자 아빠는 핀잔을 주며 성벽 위의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속옷을 억지로 벗게 했다. 갑갑한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막상 벗고 나니 한결 가볍고 시원했다.   

  성벽 너머로 이래를 보니 네모상자 모양의 파란 색 집들이 촘촘히 끼어 멀리까지 조그맣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아득히 사막의 지평선이 보인다.  
이 지역에 사는 브라만(신을 추구하는 사제 계급)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표시로 이렇게 「파란 색」을 칠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사막 속의 도시 색깔이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신기한 생각이 든다.
자이살메르의 도시 색깔은 「황금색」이였고, 조드푸르는「푸른색 도시」이다. 자이프르는 「분홍색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하니, 사막의 세 도시가 각각의 독특한 색깔로 특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성을 거의 다 올라가 궁전 가까이 전망이 트인 곳에 이르니 커다란 솥 같은 것이 엎어져 있다. 아마 병사용 밥솥으로 사용하다가 적이 쳐들어올 때 기름을 끓여 성벽 밖으로 부어 적을 물러서게 한 게 아닌가 싶다.
  그 가까이는 무기고 같은 곳이 있는데 철판 조각을 덧붙여 엮어 만든 커다란 철문은 어른들 머리가 닿을 만한 부분에 굵은 쇠 말뚝 같은 못들이 촘촘히 박혀 있어 아주 위협적으로 보였다. 잠긴 문을 달리는 코끼리로 공격하게 해서 문을 부수어 버리는 전술이 있는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또한 문 앞의 길은 코끼리가 달려 가속이 붙지 못하게 ㄴ자로 꺾어져 비탈로 되어 있다.
 

  메헤란가르 성의 서북쪽은 붉은 바위 벌판 위에 성벽이 허물어진 채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궁전 가까이 오르자 통로를 따라 조용한 북 장단과 함께 민요풍의 노랫가락이 들려와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마치 치토르가르 성을 오를 때와 같은 느낌이나 쇄잔하고 거의 주저앉아  인적마저 드문 치토르가르 성보다 훨씬 더 힘차고, 정교하며 폐허가 덜 된,  사막의 붉은 돌을 사용해 축조한 어마 어마하게 높고 섬세하고 당당한 성.  - 어 휴, 뭔 말로 그 놀랍고, 거대하게 압도해 오는 성을 형용해야 할지 !  

  궁전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대개 왕가에서 쓰던 것들이 전시되고 있다. 왕의 여러 가지 일상이 그려진 그림들은 작은 세필로 그려 눈썹하나 하나에서부터 신발 끈의 무늬까지 모든 정성이 다 들어간 그림들이다.  그러나 세밀한 기록화 같은 것으로는 아주 우수한 작품이겠지만 가슴을 파고 든다거나 그림 너머 다른 세계가 펼쳐 보일 것 같은 감동은 없었다.    
  세밀화는「미니아튀르」라고 하는데, 종교 경전의 사본 삽화로서 발전되어오다가 근세 이후 무굴화와 라지프트화가 일어남으로써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내용은 궁정풍속이라든가, 초상, 화조 등 세속적인 것을 주제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박물관의 전시품들은 전통악기들과 왕의 가마, 왕자들이 사용하던 요람, 왕비의 침실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극도로 세련된 모양의 창과 칼들이다. 검들의 모양도 넓고 아주 큰 것에서부터 섬세한 무늬가 새겨지고 가늘고 긴 것 그리고 은장도 만한 아주 탐스런 칼까지 다양했다. 사람을 살해하는 도구들의 싸늘한 아름다움에 전율이 느껴진다.   
  과연 이 무기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까.  
  혹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우리 또래의  아이들은 없었을까 ?

  다른 박물관에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모양의 예리한 창과 검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부처님과 수많은 성자들이 탄생하신 나라에서, 하늘에 머무신다는 신, 사람 속에 있는 신, 그는 바로 한 분이실 터인데, 어떠한 증오와 참혹한 살상들이, 얼마나 많은 왕국의 흥망 성쇠와 함께 일어났을까 ?
 

                
  궁전 박물관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에 왔을 때 진경이가 힘에 겨운 나머지 다리가 풀려서 아무 말도 없이 풀석 꼬꾸라졌다. 우리는 깔깔 거리고 웃었지만 참 가엾은 일이었다. 종업원 아저씨의 서비스가 지나칠 정도로 좋은 시원한 레스토랑에서 편안한 의자에 두 다리를 쭈욱 뻗고 오랫동안 음료와 간식을 먹으며 피로를 풀었다.

  가파른 시계탑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메헤란가르 성의 장엄하고 거대한 모습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볼까 고심하며 여러 가지 모습으로 촬영했다. 그런데 맞은편, 동남쪽 시내를 가로질러 나즈막한 언덕 위에 우마이드 바완이라고 하는 하얀 색의 아름다운 궁전이 보였다.  
이 궁전은 1929-42년에 걸쳐 건축되었고, 궁전을 지은 사연은 당시 조드프르 주위의 심한 기근으로 사람들이 굶어죽어 가자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지은 일종의 취로 사업 건축물이라는 것이고, 이 지역 메르와르 왕국의 후예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아직도 살고 있다 한다.
 

         
              
  시계탑이 있는 사르달 마켓에서 시계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도 혼잡한 곳이라 사람들이 없는 틈을 기다리자니 시간이 좀 걸렸는데, 이곳을 지나가던 콧뚜레도 없는 소가 심통이 났는지 비키라는 듯, 우리 옆구리를 스-윽 밀치며 지나간다. 우리는 소를 보고 눈을 흘겼다. 예전 같으면 기겁을 할 일이었겠지만, 이제 이런 정도는 놀랄 거리도 되지 않는다. 이곳 시장에서 간식거리를 준비한 후 걸어서 시내를 구경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T.V를 보다가 조드프르역 구내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듯 양식 메뉴가 많았기 때문이다.

  밤 11시쯤, 내일 새벽 5시에 기차를 타야 하기에 우리는 숙소를 역 리타이어링 룸으로 옮겼다. 이른 새벽에 시간 맞추기가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숙소의 천장은 엄청 높고 룸 입구부터 시커멓고 커다란 왕 모기들이 왱왱 대고 있다. 아빠가 2중으로 된 견고한 방문 자물쇠를 열 때까지 우리는 복도 현관에 피신해 있었다. 방을 신청할 때 관리인이 말하기를 모기가 전혀 없고 떠블 룸으로는 최고의 것이라고 하며, 노 프러브렘을 몇 번이고 되 뇌이더니 -  내 참, 믿을 수가 없어요 !
  아빠는 준비해간 우리 나라 모기향을 여러 군데 피웠는데 비할 바 없는 최고의 성능을 발휘해 모기들을 전투기 격추하듯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뜨렸다.  

  몸살 　

  새벽 4시에 언니가 화장실에 다녀온 뒤 다시 잠이 들려다가 아빠를 부르더니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입을 막고 화장실로 뛰어갔으나 침낭과 옷에 오물이 흘러 내렸다. 우리는 일순간 긴장했다.
  그 동안 몸살도, 배앓이도 안 하고 건강하게 잘 다녔는데, 왠 일일까?  어제 모기향을 너무 많이 피워서 일까, 아니면 너무 무리하게 다녀서 몸살이 난 것일까, 자이프르 까지 갈 수 있을까, 숙소를 옮기지 말 것을 그랬나,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걱정이 쌓여갔다.  대강 씻고 짐을 정리했다. 그때즈음 밖에서 관리인이, 일어나 준비하라고 문을 쾅, 쾅 ! 두들기고 갔다.

  버스로 떠나는 것이라면 포기해야겠지만, 기차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짐들을 한두 개씩 들고 역으로 몰려 들어오고 있다.
  프렛홈의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언니는 계속 쪼그려 앉아 토하고 있고 나는 걱정이 되어 언니의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아빠가 정로환을 먹이고 속을 가라앉혀 보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피로가 쌓인 것에다가 어제 밤 모기향을 너무 많이 피운 탓인 것 같다고 했다.

  언니의 손은 매우 차가웠다.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혼자 견뎌내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따듯한 방에서 안정을 취해야 할텐데.
  조드프르 날씨는 한랭한 아침 안개에 싸여 음산하고 춥다. 자이살메르에서부터 출발해온 기차 안은 비좁게 사람들과 짐으로 꽉 들어 찼지만 사람의 온기는 별로 느껴지지 않아 추웠고 예약한 좌석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우리가 예약한 좌석인 듯한 두 개의 공간이 비좁은 듯 각각 딴 곳에 떨어져 남아 있다. 그래서 좌석 번호를 보니 두 개는 같이 붙어있고 하나는 두어 칸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인데, 인도사람들이 자기네 아는 사람끼리 같이 앉으려고 하다보니까, 우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언니가 몸이 불편한데다가 우리를 따로 떼어두기가 불안했던 아빠는 우리좌석에 앉아 잡담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비키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인도 아저씨는 일어나지도 않고 이미 두 명이 앉아 있어, 앉을 공간이라곤 보이지 않는 약간 헐렁한, 저쪽 다른 빈 곳에 우리보고 앉으라고 거드름 피우는 심드렁한 눈짓을 하며 턱 끝으로 가리켰다.
  아빠는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었던지 인상을 팍 쓰면서, 좌석 번호표를 다시 한번 확인하더니, 그 아저씨의 얼굴에 검지손가락을 들이밀어 나가라는 손짓을 하며「이봐, 일어나 !, 여긴 우리가 앉아야 되겠어 !」했다. 여차하면 그 아저씨 태도에 열 받아서 아빠의 뚜껑이 날아 갈 판이다.  
  진행될 사태의 추이를 짐작했는지, 아니면 막가파 식으로 나오는 외국인과 다투기가 창피해서인지, 그 아저씨는 아무 말 않고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고, 옆에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도 가만히 있었다.  

  주위 사람들 보기에 약간 멀쑥했지만, 이렇게 해서 두 개의 자리가 나게 되고, 아빠는 사선으로 좌석이 두어 칸 떨어져 있는 곳에 나 혼자 앉혀 놓을 수가 없었는지, 언니의 몸을 여벌 옷으로 덮어준 후 우리 둘을 같이 앉히고는 따로 떨어진 곳에서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왔다 갔다 했다. 아빠의 부산에 사람들이 짜증 낼만도 할텐데 우리의 사정을 짐작했는지 아무 말들 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계속 토하고 있는 언니 곁에서 나는 흘러내리는 옷을 올려 덮어 주기도하고, 등을 두드려 주기도하며, 비닐 봉지를 잡아주기도 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아빠에게 가끔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 바라보기도 했다.  

  언니는 무표정하게 아무 말 없이 마치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창 밖으로 여린 안개 속에 듬성듬성 솟아있는 키 작은 나무와 삭막한 벌판만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다. 나는 언니의 속이 얼마나 안 좋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얼른 좋아져야 할텐데, 참 가여워 보인다.  
  자이프르는 분홍색 도시라니까 참 예쁘겠다. 내가 좋아하는 핑크색, 빨리 가서 사진기에  다 그려놓고 싶은데 언니가 아파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