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JAISALMER  '99. 1. 10 - 1. 11

   좋은 친구 파푸                                                                  

  밤늦은 11시 30분 푸슈카르를 떠나 아즈메르로 나와서 자이살메르로 가는 버스를 타려 했으나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다.  
  기온은 점차 떨어지고 있고 밤 1시가 훨씬 넘어 어디선지도 모를 곳에서 온 비좁은 골동품 버스를 타고 자이살메르로 향했다. 통로에 짐이 너무 많아서 의자 등받이 위를 붙잡고 철봉하듯 겨우 예약 석 까지 가야 했다. 웬 깊고 어두운 밤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다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점점 차안이 추워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겨울 잠바를 꺼내 입었으나 오돌오돌 떨리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려운 고난의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따스한 아침 햇살과 흔들거리는 공기 속에서 결국 우뚝 꿈처럼 솟아있는 자이살메르 성은 우리로 하여금 감회에 젖어들게 하기 마련이었다.
  아스라한 지구의 한 모퉁이 타르사막의 가장 깊은 곳, 사막 한 가운데에 마치「금덩이를 흩 뿌려놓은 듯하다」는 환상의 도시.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신기루처럼 떠있는 요새 자이살메르 성은 76m 언덕에 세워져 있지만 황량한 모래벌판 가운데 세워진 것이어서 그 모습이 더욱 장엄하다.

  9시경 버스터미널에 도착, 어디서나 만나게 되는 릭샤왈라들과 호텔 소개꾼들이 마구 몰려들었으나 엊저녁 푸슈카르에서 만난 형숙, 지연 언니가 소개해준 파푸라는 사람을 찾았다. 왠 콧수염을 기른 청년이 자기가 파푸라고 하며 나타났는데, 의외의 인상이어서 파푸 맞냐고 물으니, 주위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며 파푸는「좋은 친구」라고들 했다.

  파푸 오빠의 짚차에 배낭을 놓고 아빠는 푸슈카르에서부터 같이 버스를 타고 와서 안면이 있던 몇몇 서양인들에게 마땅한 호텔을 아직 정하지 않았으면 같은 숙소로 가서 묶자고 권했는데, 별안간 그 주위에 있던 모든 호텔 호객꾼들의 표정이 험악해져 아빠를 바라보고, 뭐라고 하며 마구 떠들어댄다. 자기들 사업에 끼어 들지 말라는 거였다.
아빠는「아차」싶었던지「그래, 알았어 ! 난 빠질 테니까 당신들 알아서 해!」라고 했다.
  신기한 것은 20여 명이나 몰려 있던 사람들의 얼굴모습이었다. 아빠가 알았다고 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서자 20여명의 살기 등등한 표정들이 갑자기 하나같이 친근감을 나타내며 곱게 펴지는 것이다. 마치 부챗살을 접었다 폈다 한 것처럼 일사불란한 모습이다.     

   자이살메르는 12세기 라지푸트 왕 자이사르에 의해 동서 무역 항로의 요지로 건설된 도시국가로서 2중으로 된 성벽은 둘레가 6.4Km에 달하는 긴 방어 벽이다. 이 바깥 성벽은 지금은 많이 부셔져 일부만 남았지만, 오랫동안 자이살메르를 보호하던 구실을 했다. 13세기 후반에 이 도시는 8년간 포위 당한 끝에 이슬람의 술탄인 알라 웃딘에게 공략되고 1570년 아크바르에 의해 무굴제국에 부속된 역사를 갖고 있다.
 

  이슬람교도와의 싸움 속에 국운이 다하였지만 성채 도시로서의 중요성은 무역상인들에 의해 이어져, 서쪽으로는 아득히 먼 이집트와 아라비아까지 연결되는 길이 이곳을 지나갔다. 그런 까닭에 자이살메르는 자연히 돈 많은 상인들의 중간 경유지가되고, 무역 중심지로서 자이살메르의 영화는 20세기초까지 이어지다가  수에즈운하 개통에 따른 교역로서의 중요성이 상실되면서부터 도시의 몰락은 시작된다. 그리고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으로 인한 서쪽 교역로가 완전히 폐쇄돼 버림으로서 변경의 한 지방도시로 전락하게 되었다. 자이살메르가 다시 중요성을 지니고 부각된 것은 1965년과 1971년에 일어난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전쟁 때문으로,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는 이곳이 전략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후 사막의 낙타 여행을 즐기려는 여행객들에 의해 다시 이 도시는 옛날의 활력을 되찾고 있다.
 

  자이살메르는 13세기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로 돌로 쌓은 가옥들의 벽면과 창문에는 아름다운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인구의 1/4이 성안에 거주하고 있다는데, 미로처럼 뻗어있는 좁은 골목길들은 돌로 포장되어 있다. 성안에는 자동차 같은 것이 다닐 수 없으므로 사람들 소리만이 들릴 뿐인 한가한 분위기지만 여러 차례 함락된 과거를 안고 있는 이 성에도 치토르가르와 같은 가슴 에이는 조하르 의식이 여러 번 행해졌다 한다.
 

　  시타델 성　

  짐을 놓고 황금색 사암으로 견고하게 건축된, 자이살메르의 상징인 성으로 올라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황토색 기운을 띠고 있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낭만을 부여해서 황금색이라고 한다.
  궁전 아래 광장은 목공예 민예품들과 마치「날으는 양탄자」같은 것을 파는 융단가게들로 번화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우선 7월 8일이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아침 식사를 맛있게 때웠다.
  여기 주인 아줌마는 약간 뚱뚱한, 체격이 좋고 인텔리 풍모인데 친절을 베풀기 위해 다정히 대해주는 모습이 상당히 거북하여 별로 반갑지가 않았다.  
  성안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는데 궁전을 보수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허물어진 궁전 벽에 맞춰 끼우기 위해 돌을 쪼던 석공들이, 우리가 무늬 세기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성안 구경하기가 재미있는가 등을 물으며 관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궁전에 들어가 테라스에 앉아, 사막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려 쪼이는 집들과 도시를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그 집들은 황금색 사암으로, 네모상자처럼 빼곡이 들어 차 있다. 수십의 좁은 계단을 돌고 돌아 아슬한 궁전 옥상에 올라 성 밖을 내려다보니, 멀지 않는 동편에는 푸른 호수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도시의 바깥은 지평선 저 멀리까지 끝없이 이어진 사막, 사막뿐이다.
  우리는 낙타가 줄을 이어 다니고 선인장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금가루를 뿌린 듯 황금색 돌과 모래로 뒤덮인 사막을 지평선 너머로까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시타델 성 옥상 위에서 진경이의 참을 수 없는「자연이 부르는 느낌」은 또 여지없이 진가를 발휘했다. 아까 콜라를 많이 마실 때 알아 봤지만 말이다. 하는 수 없이 진경이는 아빠를 보디가드로 해서, 궁전 밖으로 나가 7월  8일 레스토랑까지 가서 해결을 보고 다시 올라오게 되었다. 궁전에는 화장실이 마땅치 않고, 입구의 경찰 아저씨들이 옆으로 돌아가서 대충 누면 된다고 했는데, 인도인도 아닌 코리아의 예쁜 아가씨가 밤이라면 또 모를까 대낮에 아무 데서나 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선 셋 포인트 　

  도시의 서쪽에 있는 이 언덕은 이 곳에서 보는 성의 원경과 석양의 아름다움 때문에 선셋 포인트라고 불린다. 힌두인은 무덤을 만들지 않지만 여기에는 귀족들의 무덤에 해당하는 돔 형태의 지붕을 한 정자들과 그 아래 기념비가 늘어서 있다. 비석은 길쭉한 사각형 모양 안에 남자는 말에 탄 사람모습이 여자는 손 모양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해 거름에 선 셋 포인트로 슬슬 걸어가는데 어떤 땅꼬마가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나오는 것 같은 이상한 돌을 갖고 오더니 사라고 한다.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생긴 모습도 찰거머리 같이 생겨서 안 산다고 해도 계속 따라붙으며 귀찮게 군다. 야무지게 따라붙기에 나이를 물었더니 열 네 살이란다. 아홉 살 정도로 보였는데. 하도 귀찮게 굴어서 동문서답 격으로 얘기를 해가며 말 붙이기 힘들게 대했더니, 그 아이는 딴 일이 있는 것처럼 하며 슬그머니 떨어져 나갔다. 우리가 선 셋 정자에 올라가서 보니, 그 아이는 사막 위에 가늘게 난 길을 따라 혼자 터벅터벅 자신의 긴 그림자를 끌며 걸어가고 있었다. 약간 안돼 보이기도 했지만 그걸로 끝난 일이다.

  가는 길에 만나는 인도 사람들은 우리가 당연히 선 셋 포인트로 가려니 하고, 저쪽이라며 손을 들어 가르쳐 준다. 인도인들은 시간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인지 매우 친절하고 상냥하다.
  하기야 인도인들은 영원이라는 것이 인간을 통해 흘러간다고 여긴다니, 평소에는 마음이 넉넉해 있을 것이다.  
  선 셋 포인트 언덕은 입구부터 소가 올라오지 않아서 깨끗했고 여러 외국인 여행자들과 낙타와 터번을 두른 사람들이 있어 사막의 분위기를 더욱 느끼게 해주었다.  

  한 서양 언니는 낙타를 타고 가면서 낙타의 걸음걸이에 리듬을 맞추지 못해 한동안 허리를 숙이고 쩔쩔매며 굉장히 엉성한 폼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준다. 낙타는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며 걷고, 사람은 떨어질세라 조심스러워 아래를 보고 있다. 그래도 낙타의 방울소리가 쩔렁쩔렁 멀어져 가자 그런 대로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낙타 타고 가는 풍경은 봐 줄만 했다.
 

  돔 정자에 새겨진 아름다운 무늬들은 사막의 강렬한 햇볕을 받아 뚜렷한 명암대비에 의해 드러내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다. 저녁무렵에 사막의 석양빛을 받아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원경은 마치 먼 별나라에서 날라 온 U.F.O 비행군단들이 착륙하고 있는 모습처럼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돌로 만들어진 기념물들의 기둥과 둥근 돔 지붕에 새겨진 아름다운 무늬들을 보면서, 간식도 먹으며 놀고 있으려니까 어느 새 날이 어두워졌다. 주위에 있던 여행객들과 낙타 몰이꾼들은 언제 갔는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이미 석양이 넘어간 검붉게 적막에 젖어드는 서쪽 하늘과 하나 둘씩 나타나는 큰 별들, 그리고 멀찍이 조명등이 켜진 성을 바라보다가 내려왔다.
  

  성으로 가는 맞은편 어두운 길에서「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는 한국 인사 말 소리가나서 바라보니, 어제 푸슈카르에서 알게 된 이스라엘 청년들이었다. 먼 곳에서 외국인에게 우리 나라 인사말을 들으니 참 좋았다. 한국 인사말은 언제 배웠을까 ?  
  우리도 최소한 외국인 친구들의 인사말이라도 배워 서로 고된 여행 길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둠에 잠긴 선 셋 포인트로 가는 길이었는데, 저렇게 친구들 대여섯 명이 어울려 여행 다니는 것도 참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청년들의 여행 매너가 매우 좋지 않다고 했지만, 우다이푸르에서 친절하게 식당을 가르쳐주던 청년들이나 여기서의 청년들, 그리고 푸슈카르의 비너스 식당에서 만난 고독한 아저씨를 포함하여 모두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뿐이었지만 다 인상에 남는 다감한 사람들이었다. 다음 여행지는 이스라엘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감이 들기도 한다.   

  밤 풍경
　

  성 입구에 다다르니, 정전이 되어 도시 전체가 완전한 어둠에 싸였다. 숙소로 갈까 성안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오전에 길을 익혀두었기 때문에 성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조용히, 소리도 없이 내려온 별빛들에 의지해 길을 밟으며 성안으로 올라가니까, 호롱불 켜 놓은 가게도 있고 성 중심에 이르자 자가 발전으로 불을 밝혀 놓은 곳도 있었다. 우리는 다시 7월 8일 레스토랑으로 가서 저녁을 시켰는데 이번에는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맞아 준다. 자그마한 인도 아저씬데 주인 아줌마보다 느낌이 좋았다.

  숙소 옥상에 올라가서 난간에 걸터 앉았다. 좀더 있으면 추워질 테지만  지금 기온은 선선하고 쾌적하다. 자이살메르 성은 사방을 삥 둘러 조명이 비춰지고 있다. 누르스름한 조명이었는데, 성벽의 색이 칙칙해 보였다. 물론 관리하는 곳에서는 신경을 많이 썼을 테지만, 흰색 수은등이라면 밤이라도 황금의 성벽 색깔이 더 잘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된다.
 

  성벽 위에 조그만 점 같은 것이 움직여서 보니 사람이었다. 성안에 사는 주민인 것이다. 왠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성 같아, 더욱 정감이 간다.
  하늘의 별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오리온 별자리도 있고 큰개, 작은개,  은하수도 볼 수 있다. 초롱초롱 빛나는 것이 정겹고 아름다워 서울에서 맛볼 수 없는 정취를 느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우리 나라의 자그마한 시골에 와 있는 기분이다.

  춤추는 꼬마 소녀    　

  엊저녁 선 셋 포인트에 감동한 나머지 우리는 다음날도 가기로 했다.  
바람이 불고 약간 추웠지만 아침 일찍 떠오르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조용한 선 셋 포인트의 분위기에 잠겨들었다. 오랫동안 앉아 있으려니까, 어딘 가에서 고요를 깨고 북소리가 들려온다. 저쪽 한켠에 서양인 부부 옆에서 한 청년이 타블라(작은북)를 두드리고, 그 옆에는 7살쯤 되 보이는 어린 여동생 같은 소녀가 허름한 사리를 입고 인도 전통 춤을 추고 있는데, 아주 그럴 듯 했다.   
  북 소리에 흥이 돋은 아빠는 일어나서 북 소리에 맞춰 넘실넘실 춤을 추었다. 이를 본 저쪽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해와서 함께 웃었다.
  다시 앉아 성을 바라보며 심심풀이로 빵과 사과, 땅콩 등을 먹고 있는데,  흰 터번을 두르고 한쪽 끝을 약간 길게 내려뜨린 청년과 어린 소녀가 우리 곁으로 다가와 북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양인 부부는 가고 없고, 완전히 우리만을 위한 향연이 되었다.
  춤이 끝나자 우리는 간식거리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앞의 젖니가 세 개나 빠진 여동생인 줄 알았던 그 아이는 스무 몇 살쯤 되 보이는 청년의 딸이라 한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우리를 낳은 아빠의  감탄과 부러워하는 모습이란 !
  그들은 우리를 위해 몇 차례 더 춤을 춰주고는 사막 어디론가 떠나갔다.  

  혹시 그들은 전 생에 우리와 무슨 사연이 있어, 이렇듯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이루는 사막의 무덤 가운데서, 잠시 인연을 나누고 헤어지게 되는 것일까 ?  
  춤을 출 때 손가락과 머리, 그리고 허리의 움직임이 매우 앙징스러웠던 어린 소녀, 사막의 신비한 꿈을 간직하며 곱게 자라기를 … .

  하베리와 성내 풍경　

  자이살메르의 주택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벽면 장식이 아름답지만 귀족이나 부호들의 저택은 매우 화려하다. 대체로 사각형 집이므로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벽면에 조각 무늬를 새기는 등 장식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이곳은 낙타를 몰고 다니던 사막 상인들이 파키스탄 남부에 있는 신드를 향해 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14 -16세기 사이 자이살메르를 중심으로 한 사막무역은 최고로 번영했고, 부유한 상인들은 이곳에 그들의 집을 지으며 매우 정성을 기울여 아름답게 치장을 했으므로 그들의 집을 일컫던 하베리란 말이 나중에 훌륭하고 아름다운 집을 뜻하게 되었다.
 

   황금색 사암으로 쌓아 건축한 고급 주택의 벽면과 테라스 등에 새겨진 이슬람교도의 전통 기술인 세밀한 장식 조각은 너무나도 멋지다. 그리고 그런 저택의 정원은 잘 가꾸어져 있다. 나도 저런 크고 멋진 저택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
  저택사이의 길 양쪽으로는 골이 패여 있고 그곳으로 생활 하수가 흘러가고 있다. 오물 찌꺼기 등으로 하수가 막히면 바로 긁어내서 물길을 잡아주는데, 참 편리해 보인다.
  변두리의 따로 떨어진 곳에는 흙과 돌로 조그맣게 쌓은 상자 모양의 집들도 있다. 조그만 마당에서 일하던 여자들이 우리를 보고 일하던 손을 멈추고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바라보고 있다.
  인도의 부자는 굉장한 부자고 가난한 사람은 또 엄청 가난하다.

  하베리 주택가를 나와 성 입구 맞은편 삼거리에 있는 3층 레스토랑에서 성에 드나드는 사람들과 전망을 바라보며 쉬고 있는데 한 집에 거지들이 번갈아 가며 서너 번씩 구걸을 왔다. 그래도 쫓아내지 않고 매번 동냥을 준다.  
  밖에서 구걸하는 여자들이 3층에 있는 우리를 보고도 박쉬(적선) 좀 하라고 자꾸 손을 입과 배에 갖다 대면서 손을 내민다. 더위에 지쳐있는 우리는 내려갔다가 또 올라오기가 막막했다. 안됐지만 지금은 덥고 기운이 딸렸고 그렇다고 동전을 내던져 줄 수는 없었다.   

  성 입구에도 양탄자 파는 작은 가게들이 아름다운 무늬의 양탄자들을  널어놓고 팔고 있는데 상인들이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물건을 사라고 조르기 때문에 별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성에 들어가는 문은 입구에서부터 3개가 있는데 두 번째 문 앞에는 넓은 턱이 있어 앉아 쉬는 곳이기도 하다. 높은 성벽에 의해 그늘이 져있는 곳이기도 해서 우리는 여기서 사람 구경을 하며 앉아 있었다. 코걸이에다가 목걸이와 팔찌, 발찌 등 여러 가지 장신구를 파는 언니가 아기를 옆구리에 끼고 옆에 다가왔다.  

  어제 물건을 팔러 이리 저리로 다니다가 소가 오니까 무서워서 피하던 언니라서 얼굴이 익었기 때문에 아빠가 옆에 앉으라고 했다. 그 언니는 맨발에 팔 물건들을 몸에 치렁치렁 걸치고 다녔는데 나이가 23살이고 남편은 악사라고 한다. 약간 낡았지만 얇고 붉고 노란 색의 사리를 걸쳐 입었다. 입술에는 원색의 빨간 루즈를 바르고 눈에는 보라 빛 아이새도우를 했는데 짙은 갈색피부에 매우 잘 어울리는 그야말로 아주 섹시한 화장이다. 간간히 웃을 때는 무슨「빤」이라고 하는 담배를 씹었는지 붉게 물든, 사이가 약간씩 벌어진 치아들이 보였다.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몸매가 가냘프고 상당히 예뻐 보인다. 마치 그 이목구비가 우리 나라 멋쟁이 언니들이 정형외과에서 얼굴 뼈를 깎아 가며 수술한 그런 모습의 전형 같다.
  인형 같은, 조그만 양 발을 옆구리에 끼우고 엉덩이에 걸쳐 안고 다니는 아기는 한 살 배기인데 역시 맨발에, 장사하는 엄마 덕분인지 발찌 팔찌 코걸이에다가 목걸이 귀걸이까지 하고 있었다. 때가 질질 묻고 딱지가 더덕더덕 붙어있었지만 머리가 작고 윤곽이 아주 또렷해서 까만 장난감 인형을 끼고 다니는 것 같다. 마치 그 언니가 어릴 적부터 한번도 씻지 않고 갖고 놀던 인형 같이 말이다.
  자기 몸치장도 마음껏 하면서 장사도 할 수 있고 가게는 없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먹고 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한편으론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된다.  

    궁전 앞 광장을 약간 위로한 비탈진 공터 벽에, 쌓을 때 길고 넓적한 돌을 끼워가며 만든 난간 없는 층계에 아빠는 걸터앉아 잠시 배낭을 정리하고, 우리는 담 위에서 놀고 있는데, 7월 8일 식당 옆집의 옥상 위「기타 레스토랑」에 있던 이스라엘 청년들이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한정된 지역이기도하고 아빠와 어린 두 딸의 여행하는 모습이 눈에 잘 뜨이기도 하는가 보다.  

  나중에 우리도 여기 식당에 올라가서 피자 2개와 (여기 피자는 소형인 관계로 둥근 한판이 1인용 정도이다.) 음료를 시켰으나 음식 나오는 시간이 하도 오래 걸려서 한판만 겨우 먹고 4시에 성을 빠져 나왔다. 숙소에 맡긴 짐을 갖고 조드프르 행 버스에 올라탔다. 어제 미리 표를 사놓았기 때문에 터미널 사람들이 알아보고 친절히 안내해주었다.
  청년 사업가 파푸는 어디 가서 만나지 못하고 콧수염을 기른 숙소 지배인과 아빠는 포옹까지 다하며 서운한 이별을 고했다.

  조드프르 가는 길에　

  지구의 한쪽 귀퉁이 같은 인도의 가장 서쪽 사막의 도시, 다음에 또 인도에 온다 하더라도 언제 여기까지 오랴 싶은 심정에 매우 서운한 감정이 일어난다.
  약 삼십 분을 달려가는데 수 백 마리 야생의 낙타 떼가 느릿느릿 사막을 가로질러가고 있었다. 영화 같은 데서도 보기 드문 굉장한 장관이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3-4시간 정도 갔을까 싶은데 앞에 거대한 유조차가 발랑 뒤집힌 채 나동그라져서 기름을 냇물처럼 콸콸 쏟고 있다. 땅 덩어리가 커서 그런지 유조차의 크기도 엄청났다.
  불안한 것은 우리 버스가 기름위로 지나갈 때 폭발해서 불이 나지나 말아야 할텐데 하는 것이다.  
  넘어진 유조차 옆 좁은 틈새 길로 조심조심 기름 냇물을 건너고 안전할 정도의 거리로 떨어지니까, 운전사와 조수는 뭔가 '번쩍' 했는지 서로 마주보고 이때다 싶어 차를 멈추고 갑자기 부산을 떨었다. 누구라도 어느 하나 도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모처럼 구경거리다 싶은 사람들은 당연히 우르르 몰려나갔다. 아빠도 그런 일엔 절대 빠지지 않는 편이니까 물어보나 마나 달려나갔다.

  우리는 사실 매우 불안했다. 어수선한 상황에다가 아무 것도 없는 사막 속의 밤은 추워오고 적막한 어둠 속에, 헤드라이트 불빛들만 싸늘하게 찌를 듯이 비추고 있다. 아빠는 한동안 우리 곁에 있다가 또 구경 나가서 곁에 없고,  밤이 더 깊어지기 전 조드푸르에 도착했으면 좋겠는데, 이러다 언제 가나, 마음이 초조하다. 시간이 많이 경과하고 마음이 점차 안정되자 우리도 밖으로 나왔다.  운전사와 조수는 기름통이나 페트병 등으로 유조차에서 끝없이 콸콸 쏟아지는 기름을 받아 계속 바쁘게 왔다갔다 하면서 자기 버스기름 탱크에 넣는 것이다. 어서 떠날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그러고 보니 가까이 있는 다른 차 운전사들도 같은 모습들이다.  
  참 웃음이 나오고 기막힌 현실이었다.
  둘이 양쪽으로 아빠의 손을 꼬옥 잡자, 아빠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격으로, 어서 어두운 적당한 곳에 가서「쉬-」라도 하고 오라고 한다.  
  그러면서,「우아, 저것 좀 봐 !」하며 하늘을 가리키는데, 전혀 뜻밖의 광경이 나타나는 것이다 !
  완전한 칠흑의, 사방이 막힘 없이 탁 트인 밤하늘에 은하수와 별들의 무리가 쭈-악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정말 굉장한 장면이었다.
  은하의 물결 따라 시리우스, 베텔기우스, 그 넘어 쌍둥이별, 카펠라, 카시오페아를 거쳐 데네브까지, 남쪽에서 북쪽 지평선으로 헤아릴 수 없는 그 많은 별들 속에 빛나는「빛」들은 마치 우리학교 개구쟁이들이 들고 다니며 폼 재는 레이저 포인터로 쏘아대고 있는 것 같다.  

  큰 별 · 작은 별  
  노란 별 · 하얀 별 · 붉은 별  
  그리고 또 푸른 별  
  그야 말로 「사막의  별」들이 ….

  우리는 이 자리에서 그냥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