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UDAIPUR  '99. 1. 4 - 1. 6

　    마하라나성                                     

  밤 10시에 도착한다던 버스가 8시 30분에 도착했다. 예상 시간으로는 아직 멀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내린 뒤에도 앉아 있었다. 밖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 청년 네 명이 올라와 우리가 제일 마지막에 남은 것이라며  여기가 우다이프르라고 한다.  
  이들은 우리가 이 버스로 도착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아메다바드 정거장의 무슬림 청년들에게서 연락을 받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청년들의 안내로 시티팰리스 아래 있는 모나리자라는 호텔에 저렴한 가격으로 머물게 되었다. 설령 그들이 커미션을 챙겼다 하더라도 괜찮은 가격이다.  

  아빠는 어제부터 사원 부근에서 산 이슬람 교인들이 쓰는 모자를 계속 쓰고 있었다. 아메다바드에서의 청년들이 우리를 안내해 줄 때 아빠의 모습을 보고 무슬림(이슬람교인)이냐고 물었는데, 아빠는 별로 개의치 않고 그렇다고 했다. 왜냐하면 아빠는「모든 종교의 궁극적 진리는 똑같은 하나다」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였는지 그 아저씨들은 어린 두 딸과 함께 여행하는 외국인인 우리에게 같은 종교라는 의식과 동정심을 느껴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나 보다.  오토릭샤로 우리를 태우고 온, 셔츠 위에 올이 굵은 반소매 스웨터를 입고, 턱밑에 갈색수염을 기른 청년은 눈동자가 사슴 눈동자처럼 순해 보인다.
  계단을 올라가는 2층으로 된 정원이 있고 분홍과 빨간 색 장미꽃도 피어 우리를 반기는 듯했다. 정원의 가늘고 하얀 꽃무늬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서양 언니들도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 준다.
　

   무사 족의 왕
   조용한 고도「꿈의 도시」·「호수의 도시」라 불리는 우다이프르는 인도에서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힌다. 1567년 무굴 제국 아크바르의 공격을 받아 치토르가르를 쫓겨난 메와르의 왕 우다이 싱은 이 산간의 골자기로 도읍을 옮겼다. 건조한 지방이기 때문에 왕은 강물을 막아 인공호수를 여럿 만들어서 귀중한 물을 확보하려고 하였고 우다이프르는 그 덕분에 조용한 정취가 감도는 호수의 도시로 형성되었다.

  우다이 싱의 새로운 수도지로 우다이프르가 선정되게 된 데는 사냥 중에 만난 한 수행자의 권유 때문이다. 사냥 물을 쫓아 산중에 들어선 왕은 갑자기 숲 속의 은둔 수행자를 만났는데, 그에게 어느 곳을 새로운 수도로 삼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으니, 수행자는 왕에게 바로 이곳이 괜찮겠다며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의 입지 조건을 설명하였다. 이렇게 하여 산맥으로 둘러싸여 숲이 울창한데다 강이 흐르는 우다이프르는 메와르 왕조의 새로운 수도가 된 것이다.  그후 성을 쌓고 태양의 문을 위시하여 11개의 성문을 설치하는 한편, 땜을 쌓아 호수를 만들어 오늘날의 우다이프르 모습을 만들었다.  원래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던 인근의 산들은 무분별한 땔감 등으로 나무숲이 모두 사라져버린 황량한 모습이다.

  신의 화신 라마의 아들 라브의 맥을 이었다는 가문에 의한 메와르 왕조는 이를 통해 태양신을 자처하는 왕조로, 인도가 독립되기까지 75세대 1,400여 년 동안을 이어온 라자스탄 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왕조이다.  이슬람 세력이 무굴 제국을 통해 기승을 부릴 때 대부분의 라자스탄 왕조들은 혼인과 관리 등용 등을 통하여 회교세력과 타협하였지만, 메와르 왕조는 끝내 이슬람세력에 동화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은 라자스탄 지역 특유의 예술을 꽃피울 수 있었고, 독특한 문화적 향기를 지닐 수 있었다. 인도의 독립이후 다른 라자스탄의 왕족들이  마하라자(소 왕국의 왕)라고 그 호칭이 격하될 때에도, 이와는 구분되는 의리와 명예를 생명으로 하는 용감한 전사의 근성 있는 왕조로써, 마하라나라는「무사 족의 왕」칭호를 사용할 만큼 강한 자부심을 지녔고 이들의 후손은 지금도 우다이프르 일대의 실력자로 군림하고 있다 한다.

   궁전 가는 길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가뿐하다.  
  호텔주인은 영화 벤허에 나오는 뚱뚱한 유태인 상인처럼 귀엽게 생긴 모습이다. 허리에 끈을 두르는 가운을 입고 분홍과 빨간 장미꽃이 피어 있는 꽃밭에서 우리에게 독특한 억양으로 굿모닝 ∼ 한다.  
걸어서 5분 걸리는 시티팰리스에 가기 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뭄바이에서 하는 것보다 멀게 느껴져 잘 안 들린다. 하지만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까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건강하게 잘 다니는 것을 확인한 엄마는 안심을 하는 것 같다. 금전 등록기 같은 데서 요금이 찍혀 나오는데 잠깐 사이에 하루 묶는 호텔 비용이 나온다.

  길 앞에 커다란 암소 한 마리가 좌우로 꼬리를 몇 차례 흔들더니 갑자기폭포수같이 세찬 오줌을 누고 있다. 우리는 오줌 물이 튀길세라 급히 몸을 피했다. 궁전으로 오르는 길은 좁았기 때문에 별 수 없이 뒤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조금 후에 꽁무니에서 하얀 김이 나는 검은 건더기들을 시원하게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숙녀들이 보고 있는 데서 부끄러움도 없이.  우리는 암소가 대소변을 다 본 후 꼬리를 몇 차례 흔들어 뒤 가심 질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몸을 옆으로 해 앞질러 갔다.

  인도에서, 큰 도시 외에는 잘난 척 머리를 들고 다니면 안 된다.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앞을 잘 보고 다녀야 하는데, 그렇잖으면 소 똥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가 사람들에게 공손하고 겸허한 자세를 가르쳐 주는 스승 노릇을 하는 것 같다. 비록 방법은 별로지만 말이다.
　

  마하라나 궁전 
  이곳은 구 시가지 서쪽 끝 피촐라 호숫가 조금 높은 곳에 우뚝 솟아 있는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건축된 장대한 궁전으로 수 세기에 걸쳐 마하라나의 성이었지만 현재는 4구역으로 나뉘어 관리되고 있다. 박물관으로 일반에게 공개된 곳은 시티 펠리스로 옛날 본존 건물로 쓰이던 곳이다.
궁전은 아직 시간이 일러 입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궁전 앞에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에 들러 빵과 음료 그리고 간식거리를 샀다.  정문부터는 소의 입장이 금지되어 안으로 들어가는 곳부터는 깨끗하다.

  인도는 참 알쏭달쏭한 나라이다. 그래서 불가사의한 나라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깨끗함과 더러움, 아름다움과 추함, 성스러움과 속스러움, 부유함과 가난함, 다양한 인종과 언어 다양한 종교들이 참으로 자연스럽게 한데 버물러져 생동하는 곳이니 말이다.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아서 일러 계단에 앉아 아침 대신 빵과 음료를 먹고 있는데, 따사로운 황색 햇살에 비친 궁전의 모습이 가히 환상적이다. 꿈 같은 궁전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가느다란 기둥들에 의지해 세워져 있는 시티 펠리스 발코니의 정자 돔들은 마치 무지개가 걸려 있는 듯하다.  궁전 뜰에는 깨끗한 식당과 민예품 가게들이 있다.
  시티 펠리스 아래 쪽 건물부터 차례로 보려고 남쪽으로 삼부 니와즈의 붉게 칠해진 철책 문을 거쳐 들어갔으나「무사 족의 왕」이라고 칭하는「마하라나」후예의 거처로 현재 사용 중에 있어 입장이 금지되었다. 여기서 보는 호수의 전망은 가깝기도 하겠지만 아주 시원한 푸른빛으로 넓게 트여 있다.
 

  아치형으로 된 높직한 궁전 입구로 들어가니 사방 벽면에 무사의 복장을 하고 코끼리를 탄 사람과 말을 탄 사람의 모습이, 회벽에 수성물감을 스며들게 해서 제작하는 프레스코화로 큼직큼직 하게 하나씩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그야말로 인도 분위기가 물씬 나는 그림이다.
  안으로 들어가 위층으로 돌아 들어가는 복도 벽면에는 타일로 된 물과 연꽃무늬 바탕에 코끼리 모습이 양쪽에 있고 가운데 신상이 조그맣게 조각되어있다. 그 주위를 둘러싼 꽃무늬 장식과 그 위에 두 마리의 공작 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노닐고 있는 정원도 섬세하게 꾸며져 있다. 또한 꽃무늬 바탕에 왕과 왕비의 모습도 타일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우리 같은 여자 애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그런 디자인들이다.
 

  궁전 안 전시실에는 대리석 의자, 칼과 창, 화살촉을 한번에 여러 개로 쏠 수 있는 활, 갑옷과 투구 등과 라자스탄 지역(인도 서북부 사막지역)은 물론 멀리 페르시아나 유럽에서 수집한 가구들이 있었다. 왕들의 일상과 전쟁, 사냥 등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은 명암과 입체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극 세필로 손톱, 옷 무늬, 머리카락들이 아주 정교하게 그려져 벽을 따라 끝없이 이어져 있다. 위층 발코니의 유리와 거울을 사용한 공작 장식의 아름다움엔 그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다. 특히 미술에 소질과 조예가 많은 진경이는 감탄과 함께 상당히 신경을 쓰면서 보고 있다.
 

  3층에 있는 커다란 고목 나무와 꽃들로 꾸며진 사각형의 정원에서, 타블르라는 북과 시타르라고 하는 커다란 현악기를 켜면서 노래하는 악사들의 음악 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쉬었다. 여기서 가이드를 동반한 20대 후반의 한국 언니들을 만났는데, 한 달 예정으로 인도를 한바퀴 돌고 이제 마지막으로 이곳만 들르고 뭄바이로 해서 집으로 간다 한다. 우리는 이제 여행 시작이어서 언니들이 부러웠고, 언니들은 아빠와 여행하고 있는 우리를 부러워하며 격려해 준다. 한국 사람끼리 만나 서로 반가워하며 나머지 여행에의 안녕을 서로 기원했다.  

  미로 같은 좁은 계단을 따라 남쪽으로 가니, 여기는 왕비가 살았던 궁전인지 더욱 섬세하고 화려한 무늬와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색유리를 돌로 섬세하게 조각한 창틀에 끼워 만든 스탠드 글래스 창문과 그곳으로 비춰 나오는 빛이 영롱하다. 우리는 마치 이 궁전의 왕비나 공주가 된 듯 우아한 기분이 되기도 했다.　
 

  특이한 것으로 대리석을 얇게 깎아 화려하지는 않지만 중후한, 무겁고도 은은한 빛이 돌에서 스며 나오게 만든 창이 있는데, 스탠드 글래스 창과는 대조가 되어 또 다른 빛의 깊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발코니 창이 있어서 내려다 보니 시가지의 풍경이 넓게 펼쳐져 있다. 목을 빼고 밖을 내다보니 창문 위에 몸통 만한 벌집이 3개나 달려 있고 벌들이 왱왱거린다. 우리는 자라목이 되어 얼른 그 자리를 떴다.  인도 궁전이 멋있고 환상적이어서 안에서 3시간 가까이 머물다가 나왔다.
 

  자그디슈 사원은 시티 펠리스를 나와 궁전의 북쪽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 가다보면 좌측에 있는 힌두 사원으로 우다이프르에서 가장 큰 사원이라 하는데, 벽화와 외벽에 새겨진 조각이 멋있다.
  우리는 가트 쪽으로 걸어 내려가 연잎이 무성한 피초라 호수로 갔다. 호숫 가는 오물 투성이고, 지저분한 잎들 속에서 연꽃 봉오리가 함초롬히 맑고 고고한 모습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길바닥에 소 똥과 오물들이 지저분하게 깔렸고, 길을 따라 빈민굴 같은 집들 입구에 서양 히피 족들이 문틈에 붙어 앉아 몽롱한 눈으로 허공을 더듬고 있다. 분위기도 좀 이상하고, 진경이에게 축하할 일이 자주 생겼다. 그것은 오물을 밟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속에 푹 빠지는 정도인데, 아빠는 진경이가 소 똥을 밟아 얼굴표정이 곤란해질 때마다「축하해 - !」라고 하면서 위로 해 주었고, 이런 일이 자꾸 생기자 우리는 곧 네루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네루 공원

   인도를 더욱 살갗으로 느끼기 위해 가능한 걸어서 다니기로 했다.
한참을 가다가, 생각보다 멀고 더위가 심해 오토릭샤를 타고 호숫가를 경쾌하게 달려 승선 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다. 배는 작고 허술해서 조금이라도 기울면 금방 뒤집혀져 질 것 같다.  파테 사가르 호수 속에 자그마한, 분위기 있는 섬.  마치 잠실 종합 운동장 옆의 아시아 공원처럼 아담하고 귀여운 섬이다.  
  공원의 산책길은 쭉쭉 높이 뻗은 야자나무들이 커다란 잎들을 펼치면서 길을 따라 그늘을 만들고, 아주 가늘고 긴 주황 색의 다리를 가진 새들과 빨갛고 노란 여러 가지 색의 이름 모를 꽃들도 피어 있었다. 야자나무 줄기는 마치 시멘트 전신주 표면 같은 질감과 색깔인데 가지도 없이 쭈욱 올라가서 아득히 높은 곳에 깃털 같은 잎을 펼치고 있다. 역시나 나무 기둥 손 닿는 부분은 아무개의 낙서 등이 마구 새겨져 있다.

   호수 위의 긴 다리를 건너면 배 모양처럼 생긴 휴게실이 있다. 휴게실 밖 의자에는 동양인 청년 한 사람이 오후의 뜨거운 햇살과 깊은 적막에 둘러 쌓인 채 지도를 펼쳐 놓고, 다음은 어느 미지의 지평선 위를 헤매어 볼까 하듯 행선지를 더듬고 있었다.  
  예술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혹시 한국인인가 싶어 가 보려고 했으나 고독한 분위기가 진하게 둘러져 있어 가까이 접근해보지 못했다. 나중에 공원을 나오기 위해 배를 함께 타게 되었는데, 아빠와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목례로 인사를 나눈 후에야 그 청년이 일본사람인 줄 알게 되었다. 우리 아빠도 말씀이 워낙 없지만, 그 청년도 말을 잊은 지 한참 오래된 떠돌이 같다.     

  로크 칼라 만다르 민속박물관

   라자스탄 지방의 전통 의상과 인형, 가면 등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어떻게 이런 박물관이 다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도 서북부 사막지역인 라자스탄은 인도의 꼭두각시 인형극이 처음 생겨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안에는 귀여운 장신구들과 인도네시아나 이란 등 각지의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형들은 우리가 잘 때 보듬고 자는 귀엽고 친밀감 있는 인형들이라기보다 눈매나 수염 등에서 뭔가 무당 집에서 보는 듯한 섬뜩하고 날카로운, 이질 감이 드는 인형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동물 인형들은 갖고 싶을 만큼 귀엽고 예뻤다.
 

  관람을 끝내고 나올 무렵 인도인 대가족들이 몰려오면서 인형극을 보여준다기에 우리도 따라가서 재미있게 관람을 했다.  그 후 옆 건물에 있는 인형극장에 가서 따로 공연하는 것을 한편 더 보았는데, 좀 전 박물관 공연 실에서 본 거와 비슷했다. 코끼리와 악사들·무희들과 꼭두각시 같은 인형들이 마치 운명의 줄과 같은 투명하고 가는 줄에 연결되어 매달린 채 열심히 재주를 뽐내며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인형극이 끝나자, 남녀 무용수가 나와 춤을 췄는데, 색깔 선명한 화려한 의상과 금색장식, 부드러운 몸 동작으로 우리를 매혹시켰다.  

   인도 고전 무용은 종교 예배에서 파생한 것으로 신과의 교류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사랑과 동경과 슬픔이라고 말하는 감정들이 모두 육체의 움직임과 표정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무용수들의 섬세한 움직임에는 각각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무드라라하는 손 동작은 손가락의 움직임이 감정과 시간까지도 표현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리고 항상 좌우 비대칭의 움직임은 불균형 속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그때그때 무희의 감정에 따라 즉흥적 표현이 중시된다.  

  남자 무용수는 한참 박력 있는 춤을 추다가 머리에 항아리를 올려 놓는 묘기를 보여 줬는데,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까지 차례로 무려 12개나 올려놓으면서 춤을 추었다. 무용수가 무릎으로 앉고 보조자가 3단으로 된 의자 위에서 항아리를 올려 놓는다. 높이도 높을 뿐 아니라 무게만도 굉장할 것 같은데, 상당한 시간 동안 묘기를 보여 준다.  여자 무용수는 약간 쌀이 쪄 보였지만 우리가 책이나 영화에서 본 동작들의 전형을 그대로 나타내 보여줬다. 한참 춤이 고조되어 가자 발로 지면을 차듯 강렬한 리듬의 춤을 추는데, 발목에 찬 궁루라는 방울 묶음의 소리가 차륵 차르륵 하며 배경 음악과 함께 리듬과 박자가 아주 멋있게 조화를 이루었다.

  공연이 끝나고 어두워 질 무렵 피자가 먹고 싶었다. 시티 펠리스 궁전  아래 있는 화려하게 불을 밝힌 식당가들을 몇 군데 배회하다가, 야외에 은은한 전등불과 촛불이 설치된 사모로 비치라는 레스토랑에서 조그맣게 1인용씩으로 나오는 피자를 저녁식사로 시켰다.  밤이 늦어 날씨가 싸늘했으나 따스한 화롯불을 쬐며 식당에서 라이브로 제공되는, 그릇에 물을 높낮이가 다르게 담아 막대기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그라스폰 연주자들의 전통 음악을 감상했다. 악사들이 처음에는 아코디언도 가져와서, 아코디언 연주도 하려나 생각했는데 단지 오랜 시간에 걸쳐 음을 맞춰보며 튜닝하는데 사용하는 것뿐이다.
  넓은 마당 입구 쪽에는 조그만 막이 마련되어 있고, 지배인은 그 곳이 낮에 인형극을 하기 위한 것이니까 내일 구경오라고 한다. 손님들을 위해 몇 가지 오락거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좋다.
오늘 밤은 아주 즐겁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