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SARNATH   '99. 1. 21 - 1. 21

    새치기 아줌마 　                                                           

  인도의 모든 종교는 바라나시에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옛날부터 누군가가 오랜 수행 끝에 새로운 진리나 깨달음을 얻으면 그 사람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로 왔다.  그리고 그 강가에서 자기의 깨달은 바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가르쳤다.  여기서 참 진리와 참 깨달음으로 인정받으면 그는 참된 스승이 되어 다른 사람들은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다.  

  부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붓다가 제일 먼저 찾아갔던 곳도 바라나시 강변이다. 그도 여기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자로 인정받았고 바라나시 근교인 사르나트에서 유명한 첫 가르침을 베풀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루를 내어 가까이 있는 사르나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사르나트로 가기 위해「바라나시 레일웨이 스테이션」으로 갔다. 이 역 앞에는 바라나시에서 약 10Km정도 북동쪽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로 가는 푸른색의 미니버스가 있기 때문이다.

  오토릭샤가 다니는「다샤슈와메드로드」밖까지 걸어가기가 너무 더워서 사이클 릭샤를 타기로 했다.  
  우리가 탄 싸이클 릭샤왈라는 청년이었는데, 성실해 보였다. 싸이클릭샤는 릭샤왈라가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 속도도 느려 가능한 이용을 하지 않았는데, 이 사람은 부지런히 릭샤를 모는 것이다. 역에서 내려  릭샤왈라가 이마의 땀을 훔치고 있을 때, 우리는 신나게 온 감사의 표시로 가던 길을 돌아와 돈을 더 얹어 주었다.
  역 예매소에서 잔시에서 델리까지 가는 열차예매를 했다. 카주라호에서 잔시까지는 열차가 없기 때문이다. 전에 형숙언니가 시내 나가는 길에 예매를 해주려고 했으나 바라나시에서 싸트나까지만 하고, 잔시·델리는 여권을 요구해서 예약을 못했던 것이다.

  우리 차례 바로 앞서서 어떤 당당한 태도의 뚱뚱한 인도 아줌마가 약간 간격을 두고 서있던 우리 앞으로 한 마디 말도 없이 끼어 들었다. 새치기인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사르나트에 오늘 중으로 다녀와야 하기에 마음이 바쁜 터였다.  물론 예매표 앞에는「외국인 및 숙녀용」이라고 팻말이 붙어있었고 우리도 당연히 숙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왜 끼어 드느냐, 차례를 지키라고 했지만 화려하게 몸치장을 한 그 아줌마는 들은 척도 않고, 안하무인격이라서 기분이 더욱 안 좋았다.  그 아줌마의 예매가 끝날 때 즈음 아빠는 사람이 많은 왼편에 있고, 우리는 아줌마의 오른편에 있었는데 진경이가 심통이 나서 재빨리 아줌마의 뒤로 갔다. 앞은 카운터였기 때문에 포위가 된 셈이었다. 당연히 작은 진경이 쪽으로 빠져 나오려고 했던 아줌마는 진경이가 등을 기대고 버티는 바람에 나가지를 못했다.

  진경이는 약해 보이지만 근력이 아주 강인하다. 나랑 싸울 때면 내가 밀릴 정도고, 운동회나 체육대회 때는 계주 선수로 활약할 만큼 아주 빠르고 튼튼한 다리를 갖고 있다. 나도 몸을 옆으로 해서 몸과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아빠 쪽으로 몸을 대고 나가기가 곤란했던지 우리 쪽으로 이리저리 몸을 빼려고 한 아줌마에게, 등과 어깨를 찰거머리처럼 찰싹 기대 붙여서 따라 움직이며 절대 비켜주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화장한 아줌마 얼굴에 당혹감이 스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멋진 목걸이와 팔지, 귀걸이들이 가련하게 떨릴 정도일 때, 붉은 루즈를 칠한 아줌마의 입에서는「잘못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내 마음이 풀려, 길을 비켜주었다.  

   태자의 출가 　

  불교의 교조 고타마 붓다(기원전 566-486)는 강력한 전제 정치를 행하고 있던 마가다국의 변방 카필라 성의 태자로 태어났다.  
그곳은 현재의 네팔 국경 부근이다. 태자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당시의 풍습을 따라 친정인 콜리 성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의 무수가에서 훗날 큰 깨달음을 성취한 고타마 붓다를 낳았다. 그러나 마야부인은 태자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난다. 이후 태자는 이모에 의해 양육되었다.
이모인 마하프라자파티는 나중에 불교 교단에 귀의한 최초의 비구니(여승)가 된다.

  부왕은 태자에게 싯다르타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것은「모든 것을 성취한」,「미덕을 갖춘」이란 뜻이다. 고타마 붓다는 어렸을 때부터 왕손으로서 필요한 세속적인 모든 학문과 기예, 무술을 배우고 연마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왕손으로서의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늘 세속적 행복에 만족을 얻지 못하였다. 태자는 인생의 무상을 느꼈고, 드디어는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싯다르타 태자가 결혼한 것은 16세 때이다. 태자비는 아쇼다라였고, 이듬해에는 라훌라라는 아들을 얻었다. 싯다르타는 아들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자 「아, 장애로구나, 결박이 생겼구나」라는 말을 하였다고 해서, 그 때부터 「장애」라는 뜻을 가진 라훌라가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이 장애라는 의미는 태자의 출가를 가능케 하는 인연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인도의 관습으로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것은 가문의 크나큰 불행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계의 단절은 종교적으로도 죄악이었는데, 싯다르타는 이제 그를 둘러싼 세속적 업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태자는 끝내 사랑하는 아내와 갓 낳은 아들에게 무언의 작별을 하고 진리를 향한 발길을 재촉하였다. 한편 출가란 당시의 사회적 풍습이기도 해서 일반인에게는 그렇게 낮선 것은 아니었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태도로 번민했던 한 젊은이는 이렇게 해서 왕위와 부귀영화도 버린 채 집을 떠나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이때 태자의 나이는 29세였다.  출가 직후 태자는 마가다국의 대왕이 머무는 곳이라는 「왕사성」의 한 암굴에 머물렀다.  이후 태자는 히말라야에서 이름 있는 종교가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도를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태자가 품었던 「죽음과 삶의 문제」에 관하여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못했다. 그때부터 태자는 고행을 결심한다.  출가 인들이 고행을 수도의 방편으로 행했던 것도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인도인들은 고행을 통해 육신을 학대함으로써 정신이 그 결박을 벗고 해탈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6년의 고행으로도 태자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몸은 너무 쇠약해져서 죽음 직전에까지 이르렀을 때 태자는 고행주의로써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수행방법을 바꾸기로 하였다.  태자는 쇠약해진 몸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단식을 중단하였고, 드디어는 부드가야의 조그만 동네에서 명상에 잠긴다.  고요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채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한 그는 이제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 채 깊은 명상에 들어간 것이다.

  명상수행에 잠긴 7일째 되던 날  태자는 드디어 참 진리를 깨치게 되었다.  무엇이 존재를 괴롭혀 왔던가, 어떻게 그것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인가, 이제까지 품어왔던 모든 의혹이 걷히고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그때 태자의 나이는 35세였다. 이때부터 태자는 스스로를 붓다(깨달은 자)라고 불렀다.  
 

  붓다는 부드가야의 한 보리수 아래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후, 6백리가 넘는 길을 걸어 이곳으로 왔다. 이곳은 예로부터 성지로 간주되는 곳이며 그래서 선인들의 주거지로 불리기도 했던 곳이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붓다가 여기 왔을 때, 사르나트(녹야원)는 푸른 정원으로 꾸며져 있었다고 한다.  힌두 성지인 바라나시에 인접한 이곳에서 그를 타락자로 생각하고 접근을 경계하는 다섯 명의 옛 동료 수도자들에게 처음으로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전 인류에게 영향을 끼쳤던 불교라는 종교는 이렇게 해서 그 첫 발을 내디뎠다.

  부처가 가르친 근본 교리 내용은 여태까지 아무도 설한 바가 없었던 독특한 경지였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중도의 길」를 통해서만이 자유로울 수 있고, 이는 마음의 평정과 더 높은 지혜로 이끌며 나아가 깨달음을 얻어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에 이른다는 것이다.  붓다는 붓다(佛)와  진리(法) 그리고 승려들의 모임(僧)에 귀의를 표명하면 누구라도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자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진리(법)이란 다르마라 하며 「사물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자연현상의 원리」,「최고의 진리」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처음으로 진리의 법음을 전했다」는 의미에서 불교에서는 이 사르나트의 설법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던 장소인 부다가야 다음으로 불교인들이 중요하고 신성시하는 곳으로 남게 되었다.
  그는 35년 동안 쉼 없이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설한 뒤 그의 고향과 좀더 가까운 곳인 쿠시나가르에서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들었다. 그후 붓다의 가르침은 아쇼카 왕의 지지를 받아 인도 전역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퍼져 나가 오늘날 세계종교로까지 성장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도에서는 불교가 힌두교에 흡수되면서 종교로서의 모습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이다.

   사슴동산 녹야원　

  「성자가 머무는 곳」이라고도 불리었던 사르나트는 사랑-나트(Saran-Nath)의 줄임 말로 '사랑'은 사슴이란 뜻이고 '나트'는 주인이란 뜻이다.  
  사르나트 녹야원 안에는 수많은 절터들이 있다. 지금은 비록 기초만 남아 있으나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불교 수행자들이 무리를 지어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절터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아쇼카 왕 시대(기원전 3세기) 때로 추정하고 있다. 637년에 이곳을 찾았던 현장 법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층 층마다 나있는 긴 복도를 따라 작은 방들이 줄지어 있는 커다란 가람(절)들이  8개나 되고, 거기에는  1,500명이나 되는 불교 수행 승들이  살고 있었다. 그 건물들은 모두 대단히 아름다웠고 …, 담처럼 둘러서 있는 가람들 가운데는 넓은 뜰이 있고 가운데 법당이 하나 있었는데  높이만도  60m가 될 정도로 큰 법당이었다.  가람들은 모두 벽돌로 지었고 벽마다 만들어 놓은 법당에는 100개도 넘는  금빛 찬란한 불상들이 모셔지고 부처님이 처음 설법하신 장소에는 아쇼카 왕이 세웠다는 탑과 돌기둥이 서있고, 부처님께서 목욕하고 그곳에서 불기와 옷을 빨았다는 연못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흔적이나 겨우 느껴볼 폐허들만이 남겨져 보일 뿐이지만, 현장법사의 기록을 보아도 규모가 엄청났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이 절터는 안타깝게도 12세기에서 17세기 사이 이슬람의 침략으로 모두 허물어지고 말았다.

  사르나트는「녹야원」즉 사슴동산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바라나시가 활기 찬 것과는 달리 한가롭고 조용한 분위기다. 사슴동산은 매우 넓고 깨끗한데  이 안에 다메크 불탑과 폐허가 된 절터 그리고 대법당이 있다. 대법당은 붓다가 최초의 설법을 베푼 자리에 세워져 있다. 1931년에 지은 것으로 어설푼 솜씨로 제작한 실물크기의 붓다 상이 설법하는 모양으로 모셔져 있다.

   다르마라지카 탑 터

  불교경전에서 종종 언급되는,  여기 녹야원에 온 우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설화처럼 아득한 과거로 날아 와, 현실로 나타난 불교경전의 거룩한 책갈피 속에 있는 것이다.
 

  입구에 들어와서 의아스러웠던 점은 붉은 벽돌로 된 유적 위에 오렌지색의 가사를 입은 티베트 승려들이나 일반인들이 올라가서 서성거리는 점이었다.  처음엔 정말 이래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듯한 모양새들의 집터 외에 둥그런 원형의 거대한 탑 터가 눈에 뜨인다.  탑은 아쇼카 왕이 건립 한 것이라고 추정되는 것으로 건립 당시에는 밑 지름이 13m 였는데, 그 이후 몇 번의 증축이 있어 커졌다고 한다.  현장스님의 여행기에서 이 탑에 대해 언급하기를 「정사의 서남쪽에 아쇼카 왕이 세운 석조 스투파(탑)가 있다. 기단은 붕괴되었으나 지금도 지름이 33m남짓 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탑은 1794년 바라나시의 관리가 바라나시에 시장을 짓는데 필요한 석재와 벽돌을 충당하기 위해 헐어버렸다. 그때 탑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약 9m 되는 지점에 돌 상자가 있었고 그 속에는 녹색 대리석으로 된 사리 용기 하나와 그 용기 안에는 누군가의 뼛조각이 들어 있었다 한다. 그 탑과 뼛조각이 누구의 것인지 아는 사람이 없어 뼛조각은 갠지스 강물에 떠내려 보내버리고 사리용기는 탑 터 근방에 버렸는데 뒷날 탑 터를 발굴하다가 사리용기는 우연히 다시 발견되어 캘커다 박물관에 보관 중이라 한다. 하여간 지금 남아 있는 둥근 탑 터는 그 나름대로 다른 폐허가 된 유적들과 모양세가 어울려 상당히 조화가 되고 있었다.

   다메크 스투파

  다메크 스투파는 붓다의 첫 설법을 기념하는 탑으로 6세기에 만들어졌다.                     
폐허뿐인 넓은 들판에는 마치 짧은 총알처럼, 또는 뚜껑을 벗긴 루즈처럼 생긴 거대한 다메크 스투파(불탑)가보이고 그 뒤에는 하얀 건물인 물간다쿠티 사원이, 그리고 멀찍이 왼편에는 녹색 철망이 넓게 쳐져 있고 그 안에 사슴들이 뛰어 놀고 있다.
 

   오래 전부터 위대한 군주나 승려의 시체를 화장한 후 유골 위에 탑을 세워 기념비로 만드는 풍습이 있어 왔으나, 석가 출현 이후 탑의 건축은 완전히 불교적인 특징을 보여주게 된다. 다메크 스투파는 단순한 모양에 비해 가까이 가서 보면 아주 섬세하고 아름다운 돌 조각의 꽃무늬와 기하무늬, 넝쿨무늬, 구름과 연꽃무늬들이 새겨져 있어 탑 모양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현재 2단의 2중으로 되어있고 꼭대기 부분은 무너졌다. 높이는 44m이고 밑 부분은 지름이 37m 정도이다.  탑의 중심부는 붉은 벽돌로 되어있고 1층은 그 벽돌 위에다 직사각형의 돌을 짜 맞추어 쌓았다. 그 중간 중간에 8개의 작은 감실(불상을 모셔두는 공간이나 방)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감실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1956년까지 굽타 시대의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탑을 따라  티베트 순례자들 수십 여명이 행렬을 맞춰 탑을 돌기도 하고, 잔디가 깔려 있는 들판 쪽으로 오체 투지라는 몸을 완전히 땅바닥에 엎드려 눕혀 큰절들을 하는 등 예불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관광객들이 구경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티베트인들은 몽골 계통이어서 그런지 우리 나라 사람들과 거의 비슷한 모습들이다. 약간 다르다면 광대뼈가 더 튀어나오고 얼굴이 좀 더 검어서 강인한 인상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한 아이가 다가와서 불상을 사라고 한다.  찰흙으로 만들어 불에 구운 테라코타 작품인데, 틀에 의해 여러 개 찍어낸 것이겠지만 상당히 섬세하고 내용과 깊이가 있어 보였다.  그 애가 부르는 값의 반에 반값을 주겠다고 하니 본전도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애보다 큰 중학생정도의 아이들이 와서 똑같은 불상을 사라고 하니까, 경쟁자가 생겨서 그런지 그냥 우리가 주겠다는 값으로 넘겨주고 갔다.  
 

  붉은 벽돌로 남아있는 승원의 유적은 돌아다니기에 아주 흥미로운 곳이다.  유적의 모양도 마치 쌓기 블록 같이 갖가지로 다양하다.  우리는 부처님이 지나다녔던 길과 통로를 뛰어다녔다. 유적의 틈바구니를 오르내리며, 좁은 벽돌 위에서는 양팔을 벌려 수평 건너기도 하고, 잔디 깔려 있는 들판에서는 오랫동안 네잎 크로버를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가끔 반얀 나무 그늘아래 더위를 피하며 쉬기도 했다. 반얀 나무는 줄기에서 바로 뿌리를 내리는 신기한 나문데, 인도인들에게 신성하게 여겨지는 나무라 한다.
 

   사면 사자상

  녹야원 남쪽 길 건너편에 아담한 모습의 고고학 박물관이 있어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5세기의 작품으로, 고요히 명상에 잠겨있는 붓다의 조각상이 있고, 인도 전 지역에 세웠던 아소카 왕의 돌기둥 중 정상에 있던 사자 상으로 최고의 걸작 품이라고 하는「사면 사자 상」이 있다.
  사면 사자 상은 둥근 모양의 받침 위에 네 마리의 동물을 새기고 동물 사이에는 윤회를 의미하는 원의 그림을 배치해 놓았고, 동물상 위의 맨 꼭대기에는 사방을 바라보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 상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놓았다. 이 작품은 마우리아 제국의 권위와 힘을 표현한 것으로, 최근 독립 후에 인도의 상징으로 채택되었다. 인도의 국장으로서 우리주머니에 들어있는 25, 50파이사, 1루피 동전 그리고 10루피 지폐에도 도안이 되어있는 있는 아주 멋있는 작품이다.
 

  큰 도로에서 정문으로 들어가면 화단으로 둘러싸인 물간다 쿠티라는 사원이 보이는데 이 안에는 벽면 가득히 석가모니의 생애가 묘사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우리는 신 벗는 일이 싫어서 들어가지는 않고 밖만 돌아보았다. 주변에는 중국 절, 티베트 절, 자이나 사원과, 일본 절들이 있다. 우리 나라 절은 한참 떨어져 있어 화살표가 붙은「한국 절, 녹야원」이라는 안내판만 붙어 있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할 때 바라나시로 바로 가기도 뭣해 삼거리 식당에서 아궁이 불에 직접 구워 만드는 탄도리 치킨으로 요기를 하고 한국 절에 구경 가기로 했다. 스님들은 지금 어느 행사에 가서 한동안 절이 비어있다고는 했지만 왠지 마음이 끌렸다. 약 20여분 이상 마을을 거치고 들판을 지나니 짙어 가는 어둠 속에서 몇 채의 집과 함께 우리 나라 절이 나타났다. 일반적인 절의 모양은 아니고, 그냥 시멘트를 바른 벽과 슬라브 지붕을 한 평범한 가정 집 같은 곳에 「인도 안의 작은 한국, 녹야원」이란 팻말만 붙어 있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썰렁한 분위기였다.  자동차가 다니는 큰 도로에는 삼성과 대우의 선전용 커다란 간판들이 세워져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왠지 볼 때마다 반가웠다. 그리고 아빠가 좋아하는 오리온 쵸코파이는 가격이 굉장히 비싸다. 또 땅콩 같이 생긴 마티즈가 굴러다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어, 친근감과 함께 우리 나라 회사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