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varanasi/ india

전설적인 영적 도시

히말라야의 얼음물이 녹아내려 평원을 타고 내리면 마치 시바신의 이마에 걸린 신을 상징하는 초승달의 장신구처럼 구부러진 곳에 바라나시가 있다.

시바 신의 머리카락으로부터 흘러내린다는 것으로 더욱 성스럽게 여겨지는 이 갠지스 강을 끼고 아득한 옛날부터 도회지로 형성되어 온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단절됨이 없이 번화한 도시로 이어져오는 바라나시는 원래 「영적인 빛으로 충만된 도시」라는 뜻인 「카쉬」로 불리어온 곳이다.

    갠지스 강과
     희미한 안개에
     젖어 있는 피안

바라나시라는 오늘날의 이름은 북쪽과 남쪽에 각각 바루나 강과 아시 강에서 비롯된 것으로, 도시의 기원이 5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옛날부터 인도에서 가장 「인도다운」도시였고,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또한 이 도시를 일컬어「작은 인도」니,「바라나시를 봤으면 인도를 모두 본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인도의 특성이 곳곳에 베어 나는 곳이기도 하다.

  힌두 신앙과 교리 연구의 중심지로 오래 전부터 중요시 되어온 바라나시는 세상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였다. 인도의 대표적인 서사시 마하바라타는 바라나시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으며, 푸라나 신화집에는 3천년 전에 바라나시가 이미 거대한 도시였다고 한다.  바라나시는 불교초기 문헌에도 등장한다. 석존의 호사스러웠던 왕자 시절을 묘사하는 곳엔 그가 카쉬 즉 바라나시의 비단으로 만든 옷만을 입었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로 그 옛날부터 전통의 비단 산업을 위주로 하는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바라나시의 이 유명했던 비단 산업은 지금도 변함없다.
  19세기말에 바라나시를 방문했던 미국인 작가 마크 트웨인은 바라나시를 「역사보다 오래된 도시이고, 전통보다 오래된 도시이며, 심지어 전설보다도 더 오래된 도시이다」라고 표현했다 한다.
  강가 강 (힌두인들이 부르는 갠지스 강)에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강가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아버지인 히말라야와 함께 산에서 살았다. 히말라야는 왕이었고 강가는 그의 공주였던 것이다. 이들이 사는 산 아래 들판에는 6천 1명의 아들을 가진 사가라라는 고약한 왕이 살고 있었는데, 이 왕은 평화의 신인 비슈누의 말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다. 비슈누는 시바의 또 다른 현신인데, 사가라 왕의 아들 6천명을 모두 불에 태워 죽여 버리고는 강가가 그녀의 눈물로 죽은 그의 아들들을 씻어 주지 않는다면 결코 하늘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가라 왕은 눈 덮인 산으로 강가를 찾아가 그의 애절한 사연을 강가에게 전하고 도와 줄 것을 부탁했으나 강가는 결코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남은 사가라의 유일한 아들도 간절히 청했으나 강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사가라에게는 착한 손자가 한 명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기라타였으며 사가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는 매우 착했고 신들의 말을 잘 들었으므로 비슈누도 그를 매우 아껴, 그의 할아버지의 잘못을 용서해주기로 하고 강가의 눈물이 비슈누 자신의 머리를 타고 흘러내리도록 했다. 비슈누의 머리를 타고 내린 강가의 눈물은 거대한 강이 되어 들판을 가로질러 갔고, 사가라 왕의 6천명의 아들들의 타고 남은 재를 씻어, 죽은 영혼들이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가는 가운데 이러한 전설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타고 남은 죽은 사람의 재를 강가 강에 뿌리고 있다.

갠지스강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힌두인들의 종교 의식이다. 죽음 뒤에 오는 새로운 삶을 위하여, 신앙의 영감으로 휩싸인 순례자들은 강변의 가트에서 목욕 예식을 올리기 위해 새벽부터 모여든다. 날이 채 밝기 전에 모여든 이들은 간단하게 몸을 푼 후 찬물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떠오르는 해를 향해 절을 하면서 기도를 올린다.
강가에 모인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일생에 한번 바라나시를 방문해서 그들의 모든 죄를 씻어버리려고 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강가에서 그들의 마지막 숨을 거두기를 바란다. 갠지스 강에서 죽는다면 다음 세상에서는 가능한 한 제일 좋은 조건에서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죽음을 눈앞에 둔 부모에게 바라나시를 순례할 수 있는 여비를 주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는 이야기도 있다. 갠지스 강을 순례하는 사람이 자기 원죄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섯 개의 가트(목욕장)에서 목욕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종교 의식들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그들의 신앙과 전통으로부터 스며 나와 세월이 흐르면서 모양을 갖춘 예배 의식이 되었다.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는 일은 신과 만나는 일이며 그 행위를 통해 모든 죄를 씻어낼 수 있다고 믿는 인도인들의 순례는 인도 전역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겠다.

인도인들에게 있어 종교란 열정적인 종교행위와 봉헌, 그리고 신명나는 축제들을 통해서 신에게 향하는, 조상 때부터 유전적으로 흐르고 태어날 때부터 몸에 배어있는 영혼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순례의 중심지인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7성도 중에서 제일 중심 도시이고 여행자들에게도 제일 흥미를 주는 곳이다. 덧없이 흐르는 갠지스 강의 수많은 가트, 거기에 몰려든 사람들, 그리고 신전과 축제 분위기 ….

옛날부터 갠지스 강변의 기름진 들판을 끼고 있었던 바라나시는 영적인 힘이 강하게 드러났던 도시였고, 모든 것이 풍부했기 때문에, 성도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주변 통치자들의 끊임없는 싸움의 불씨가 된 도시이기도 했다.
힌두 성지로서의 바라나시는 석존 이후 번성했던 불교 시대와 AD11세기경 이슬람의 세력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무굴제국의 반 힌두 정책으로 유명한 아우랑제브 황제는 바라나시의 영적 기운을 없애기 위해서 강가에 있던 수많은 힌두 신전들을 부수고 그 자리에 이슬람 모스크를 세웠다. 따라서 지금 강변에는 18세기 이전의 힌두 신전은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그후 1738년 힌두교가 다시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신전들과 가트들이 복원되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바라나시 레일외이스테이션」에 도착해서 오토릭샤로 다샤슈와메드라고 하는 이름 있는 목욕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고도울리야라는 교차로 한 블럭 앞에서 내렸는데 오토릭샤는 이 이상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목욕장이라고 하는 가트까지 광범위하게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 우리는 다샤슈와메드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과 가까운 강파티 게스트하우스로 가려는 것인데, 형숙 언니의 친구가 이즈음 그곳에 머물 예정이어서 어쩌면 만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빽빽이 들어선 상점들 사이로 난 좁고 매우 복잡한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건물 벽들에는 강파티로 가는 화살표가 곳곳에 그려져 있다. 안내 화살표가 있다 해도 그냥 찾아가기는 어려웠을 텐데 다행히 그 게스트하우스의 호객하는 청년을 만나 한참 동안이나 어지러울 정도의 길을 따라갔더니, 갠지스 강변 위에 높직이 자리잡은 전망 좋은 숙소가 나타났다.

테라스에서 한국인 여자 스님이 의자에 앉아 강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 있다가, 어린 우리가 어떻게 바라나시까지 다 왔느냐며 신통하다는 눈빛으로 맞아준다. 만나기를 기대했던 언니의 친구 정미언니도 다행히 있어, 언니들끼리 서로 부둥켜안고 친구간의 진한 정을 나누었다. 또 여행 중에 만나서 함께 묶고 있는 재은 언니도, 그리고 또 다른 한국인들도 있었다. 우리도 여기에 머물기로 하고 2층에 방을 구했는데 방이 너무 커서 썰렁했으나, 테라스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가트와 갠지스 강, 그 너머 피안의 모랫벌 과 숲이 희미하게 보이는, 전망은 비길 데 없이 좋은 곳이었다.

숙소아래
가트에 앉아

아침도 제대로 못하고 12시 30분쯤에 도착했기에 바바라고 하는 식당으로 갔다. 그 식당은 강가를 따라 남쪽으로 칠백 미터 정도 내려가서 일본인 여자가 운영한다는 구미코라는 숙소를 조금 더 지나, 시장 안쪽으로 올라가서 약간의 미로를 지나는 곳에 있다. 이곳은 활달한 정미언니가 머물면서 단골로 만들어 놓아서 이미 한국인에 맞는 음식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언니가 티벳 쪽에서 구해 놓은 고추장 된장 등이 선반 위에 놓여져 있었다. 정미언니는 지금 열심히 대화 중이면서 동시에 오른발은 한창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여기서 언니들이 소개해준 음식들은 모두다 우리 입에 맞아 좋았다.

종교의 수도로서 오랜 역사를 지닌 바라나시는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음악과 춤을 공연하는 크고 작은 연주회가 끊임없이 열리면서 이곳은 뿌리 깊은 예술의 고장으로서 맥을 잇고 있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길을 가다보면 전통음악이나 춤 등을 가르치는 교습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 숙소 옆방의 한 서양청년은 북 장단을 익히고 있었다. 지금은 한창 선생과 인디언 소리를 질러가며 빠른 리듬으로 고양된 기분을 풀어가고 있는 중이다. 오른편 공용 화장실로 가는 방의 스웨덴 언니는 보라 빛 사리를 입고 손바닥에 무늬를 그리고 다녔는데, 비단에 새기는 인도 전통문양을 공부하느라 밤이 늦어서야 들어오곤 한다. 그 언니는 이곳에 여러 달 머물면서 교습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 원숭이들을 이곳 숙소 주위에서는 신기하게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옷 등을 빨아 햇볕에 걸어놓고 외출할 수도 없다. 세수할 때 수건을 어디고 마음 놓고 걸어둘 수도 없고 비누 같은 것도 조심해야 한다. 원숭이들이 빗물통과 파이프 관, 난간, 지붕과 지붕을 날쎄게 타고 다니며 갖은 약탈을 일삼기 때문이다.
테라스에 앉아 간식을 먹을 때도 뺀질이 같은 녀석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옆에서 눈을 말똥거리며 바라보고 있다면 귀여워서도 주겠지만 그게 아니라, 딴청을 떨고 있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뺏어가기에 다칠세라 발이나 주먹을 휘둘러 쫓아버리곤 한다. 수건을 빨아서 난간에 걸어놓았는데 언제 왔는지 원숭이의 손이 쓱 나타났다. 아빠가 「이 노무 새끼가 -」하면서 때리려 하자 꿀밤을 맞기는 싫었는지 엉겁결에 노란 오줌을 찔끔 누면서 도망 가는 꼴은 웃기기도했지만 한편 가엾기도 했다. 그래도 이놈들은 엘레판타 섬의 원숭이들보다는 사납지 않은 것 같다.

뜨거운 태양이 서쪽 사원 탑 맨 위에 솟아있는 무화과 열매 모양의 둥근 돌에 겹쳐질 때면 숙소 바로 위층인 옥상은 부드러운 그늘에 잠겨 든다. 여기는 사방이 트였기 때문에 그늘이 들면 올라가서 옥상이 있는 집집마다 사람들이 연 날리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아래로는 빨래하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가득 싣고 강 물 속으로 잠겨 들 듯 떠다니는 배들도, 강 건너 모래사장과 그 뒤의 숲, 화장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도, 다샤슈와메드 가트에서의 북소리와 복잡한 인파도 한번에 다 보인다.

옥상 난간에 기대어 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왼편으로 끌어당기는 듯 한 느낌이 있어서 바라보니 옆 건물 2층에 진경이 또래의 피부가 하얀 드물게 예쁜 소녀가 다른 검은 피부의 소녀들 세 명과 함께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자신들의 호감을 우리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마주 바라보며 손을 흔들면서 서로의 좋은 마음을 주고받았다.

옆 건물의
예쁜 소녀들

   고동색 계통의 굵은 털실로 짠 조그만 덮게 모자를 쓰고 있는 그 애 이름은 유니카였으나, 이름을 이야기 하기도 전에 얼굴에 유니카라고 쓰여있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것은 영화「머큐리」에서 등장하는 9살 먹은 자폐아가 어려운 퍼즐 암호를 바로 보고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뭐, 그러한 이치일 것이다.
  하도 귀엽게 생겨서 기념촬영을 했는데, 그 애가 아래층에 있고 옆 건물이라 떨어져 있어서 우리와 함께 넣어 사진을 찍었지만, 잘 안나올 것 같다고 아빠가 혼잣말로 말하자, 들리지도 않은 곳에 있던 아이들이 윗 층으로 달려 올라왔다. 그래서 10여 미터 뒤에 떨어져 있는 소녀들과 나란히 서서, 초점은 그 애들에게 맞추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서로 마주 바라보며 미소를 나누었다.
  다음날 오전 유니카는 2층 넓은 테라스에서 상을 놓고 단정히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바라보면 곧 느낌이 전해져 공부를 방해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안젤라는 우리 또래로 가트에서 여러 종류의 목걸이, 팔지 등 토산 관광 상품을 파는 피부는 검지만 호리호리하고 두상이 작은데다가 윤곽이 뚜렷해 꼭 인형같이 생긴 아이다.
안젤라에게서 목걸이와 팔찌를 몇 개 샀다. 물론 가격은 우리수준에 맞는 걸로 했는데, 다섯 손가락에 목걸이들을 줄줄이 걸어가며 파는 폼이 아주 프로급이다. 옆에는 큰언니 정도 되는 사람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부지런히 구슬을 엮어 목걸이와 팔지 등을 만들고 있다. 안젤라는 판매담당인 셈이다. 나무로 된 것, 조개껍질로 된 것, 조각대리석에 구멍을 내어 만든 것 등이 있었으나 주로 돌과 나무로 둥글게 깎아 꿰어서 만든 것들이 많다.
목걸이들도 아무렇게나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바의 것, 크리슈나의 것, 락시미 것, 비슈누신이니, 두르가신 들이 거는 것이라는 등 각각 족보를 말해주면서, 한 묶음의 목걸이를 들어 팔십 루피에 가져가란다. 인도에 오래 머물고 있었던 언니들이 이 정도면 괜찮은 것이라고 해서 샀는데 기분이 좋아진 안젤라는 가늘고 붉은 목걸이 다섯 줄을 덤으로 더 주어서 우리도 기분이 좋았다.

뱃사공인 듯한 아저씨가 조무래기 아이들을 데리고 배 위에서 가족 단위로 목욕을 하고 있다. 머리카락은 오래도록 비누질을 하여 물통으로 물을 퍼서 머리를 씻긴 후, 아이의 한쪽 손만 잡고 물 속에 자기 손이 담길 정도로 완전히 쳐 박아 여러 번 풍덩풍덩 빠뜨려 몸을 헹구었다. 아이들이 꼭 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원숭이들 같다. 바짝 마르고 새까만 아이들은 숨이 막혀 머리가 나올 때마다 숨을 몰아 쉬며 기를 쓰며 울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네 다섯 명의 아이들을 똑같은 방법으로 물 속에 넣었다 뺏다하고 있다. 때를 벗긴다거나 씻기는 것과는 거리가 먼 물 칠만 하는 것으로 끝이다. 다른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머리 감는데는 상당한 정성과 시간을 들이는데 몸은 물 바르는 정도로 대충한다.

십 수명의 빨래하는 여자들이 뿌연 비눗물을 흘려 보내고 있는 바로 아래, 한 여자아이가 머리를 감고 있다. 여러 번 반복해서 감는 시간이 거의 삼 십분은 된다. 그리고는 물통을 담궈 강물을 떠가는 것이다. 물통이 허드렛물 담는 용기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식수로 아니면 밥 짓는데 사용하려는 것인지… .

숙소 계단을 오르는데 악다구니같이 생긴 한 여자아이가 진경이에게 다가와 툭 밀었다. 진경이는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짜증이 나서 「뭐야 - 」하니까, 그 여자아이도 따라 「뭐야-」하는 거였다. 진경이는 재수가 없어서 그 애를 밀쳐 넘어뜨렸다. 그 애가 일어나더니 다시 진경이를 툭 쳤다. 서로 주먹이 몇 번 오가고 몸싸움이 시작되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나는 내 자신도 모르게 그 애 얼굴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오 년 이상 리듬체조를 해왔던 감각이, 동생이 남과 싸움이 붙게 되자 태권도식으로 발 차기가 졸지에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한테는 상당한 위협이 되었는지, 주춤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는 돌맹이를 나에게 집어 던졌는데, 진경이가 막아 주었다. 씩씩거리던 그 애는 옆에 있던 조그만 페트병을 주워 우리가 있는 땅바닥에 세게 탁- ! 던지더니 획 돌아 가버렸다.

나중에 가트에서 강아지를 안고 있던 그 아이는 우리를 보자 강아지를 내려놓더니 우리 쪽을 향해 달려왔다. 그래서 약간 긴장을 했는데, 우리 옆으로 비켜, 뒤쪽에서 놀고 있던 자기 친구들한테로 뺑소니를 치는 것이었다.

  나무판으로 만든 창 틈새로 아직 까만 새벽이 보인다. 침낭 안의 보금자리는 아늑하고 따스했다. 목욕하는 물소리도 안 나는 어두운 강가에서 한 할아버지의 심한 기침소리가 아까부터 들려왔다. 들숨과 날숨이 전혀 조절이 안된 상태에서 계속적으로 기침이 나오니까 완전히 옆구리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돌아가시는 소리가 쥐어짜듯 커-얼럭 크어-어얼렄하며 났다. 마치 누가 목을 쬐는 듯, 끊어질 듯한 숨결 가운데 간간이 악을 쓰며 마구 섬뜩한 독설을 퍼붓고 있다.
  나가보고 싶었으나 무서웠다.
  충혈된 눈의 흰자위를 번득이며, 허연 거품을 튀겨가며 아무에게나 마구 손가락질을 하며 귀기 서린 저주를 퍼부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한 시간쯤 지나서야 기침소리는 멎었고, 한 둘 첨벙거리며 목욕하는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강은 아침 안개로 두텁게 싸여 있다. 혹시 새벽의 그 할아버지가 있는가 궁금하기도 해서 나가보았다. 그러나 죽어 쓰러져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설령 죽었다 해도 사람들이 강에 던져버려 없었을 것이다.

숙소 테라스와 30여 미터 정도의 낭떠러지 같은 벽 바로 아래는 길이 있고 가트로 강과 연결되었는데 흰 사리를 입은 아줌마가 깨끗이 비질을 하고 있다. 저렇게 청소를 담당하는 사람은 카스트라는 제도 중에서 가장 낮은 계급인, 몸만 닿아도 영혼이 오염된다는 불가촉 천민이다.
웅덩이에 고인 물을 쓰레기와 함께 쓸어내는데, 비질을 따라 물이 쓸려 나가고 마른 바닥엔 물에 젖은 빗 자국이 마치 초서 서예를 쓰는 것처럼 꾸불꾸불 길게 휘갈겨지고 있다. 저 아줌마는 무심으로 자신도 모르는 「예술」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한 구역의 모든 쓰레기들을 가트 쪽으로 몰아가더니 뜻밖에도, 성스런 강물 속으로 가차없이 쓸어버렸다 … .
… 어휴, 정말 놀라워요.

    길에 고인 물을
     비질하며
     무심으로 추상 예술가가 된
     청소하는 아줌마

  유니카가 사는 집은 3층집이었다. 마당처럼 넓은 테라스가 있는 2층은 몇 가옥이 세 들어 살았는데, 큰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깡마르고 까만 모습들을 한 20대의 청년과 아버지되는 사람이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 급기야 아버지는 벽에 기대어 있는 빗자루로 아들을 마구 패더니, 아들이 도망을 가니까 등에다가 빗자루를 던지며 쫓아갔다. 아들이 구석에 몰려 더 도망을 하지 못하자 신고 있던 낡은 슬리퍼를 벗어, 하는 수 없이 맞을 각오를 하며 웅크리고 있는 아들의 머리통과 어깨를 철썩철썩 소리가 나도록 마구 친다.
  아침부터 아들은 무얼 그리 잘못했을까 싶었다.
  떨어져서 구경하니까 약간 재미도 있고, 안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들을 보니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한 것 같다.

가트란 육지에서 강으로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어 순례자들이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계단을 말한다. 남북으로 완만하게 굽이져서 흐르는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는 것은 바라나시에 순례 온 사람들이 절대로 빠뜨릴 수 없는 의식이어서 백여 개를 헤아린다는 가트들이 바라나시 시가지와 연결되는 강의 서편에 줄을 지어 설치되어 있다.

  바라나시의 가트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다샤슈와메드는 중간 지점에 있다. 그곳은 시가지 큰길을 따라가면 놋쇠그릇이나 팔지, 목걸이 등의 장신구들과 각종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기구들을 파는 상점들이 줄을 이어 서 있는 마지막 강과 맞닿은 곳이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열(das)마리의 말(aswa)로 제물(medh)을 바친 곳이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의 다샤슈와메드 가트는 바라나시의 가트 중에서 가장 활발한 곳의 하나이다. 이 부근에는 평상들이 놓여 있고 먼 길을 걸어오느라 지치고 피로한 순례자들의 몸과 팔 다리를 마사지하는 안마사들, 의식을 치르는 데 한 몫 하는 소년 사제들, 손님을 찾느라고 눈이 반짝이는 뱃꾼들, 신성한 강물을 이용하여 끓인 차를 파는 아이들, 순례 객들에게 적선할 기회를 주는 거지들이 있다. 그리고 그곳 가트를 따라 걷는 길에는 토산품과 목걸이나 팔지 등을 들고 다니면서 장사하는 사람, 빨래나 목욕하는 사람들, 관광객들로 붐벼 하루 종일 활기에 차있다.

다샤슈와메드 가트
입구의 큰길

     바라나시의 가트 중
     가장 대표적인
     다샤슈와메드 가트

다샤슈와메드는 밤이면 더욱 흥겨워진다. 불빛 속에 흥청대는 분위기만으로도 유쾌한 밤을 맞이할 수 있겠지만, 강가에 벌어지는 촛불과 울긋불긋한 등으로 장식한 축제분위기의 의식, 하늘로 오르는 듯한 노랫가락, 원시적이고 장엄한 북소리들이 사람들의 들뜬 분위기를 마술적으로 끌고 간다.
강과 가까이 있는 조그만 사당에서는 열 세 살쯤 되는 아이가 붉은 등불을 밝히고 북을 두드리고 있다. 북채로 치는 것이 아니라 쪼임 줄 있는 곳 좌우에 끈으로 나무토막을 묶어 손잡이 있는 북을 양쪽으로 왔다갔다 빠르게 돌리면서, 원심력으로 나무토막이 가죽을 쳐서 소리를 내게 했는데 아주 울림이 좋아 투웅 투웅하는 신비한 메아리 소리가 난다.

구경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는 참에 같은 숙소의 한국 여자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걸망에 물건을 담아 한쪽 어깨에 걸머지고 맨발로 다닌다. 우리가 가트로 난 길을 따라 바바 식당으로 간다고 하자, 그 길은 머니까 시장을 통해 가는 길을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맨발의 스님」으로 전부터 알려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약간 쑥스러웠는지 운동화를 빨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신발을 벗어 털어 버렸으니 홀가분하시겠다고 생각하며 스님을 따라 갔는데 우리가 전에 한번 나왔던 골목과는 더 멀리 가서 들어가려고 했다. 우리가 저쪽 골목 같다고 하자 아니라고 확신하는 바람에 말없이 따라갔는데, 스님께서는 입구에서부터 왔다갔다 하더니 헷갈리기 시작하는 듯 주변을 맴돌았다. 그래서 아빠는 스님께, 우리는 여기서 집에 전화도하고 더 머물다가 숙소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을 테니 먼저 들어가시라고 했다.

다샤슈와메드를 조금 벗어나 숙소로 가는 가트는 아무도 없는, 칠흑처럼 어두운 길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강물의 흐릿한 반짝임과 물고기 퍼득이는 소리로 짐작을 하며 겨우 더듬어 갔다. 숙소에 다다르니 희미한 불빛과 함께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나왔다. 숙소 식당에서 저녁을 들기로 한 것은 스님이 무안해하실 것 같고, 추천도 해 주었기 때문에 온 것이다. 식사 후 밤 기온이 차가워져 카운터 쪽 마당에서 종업원들과 모닥불을 쬐었다.

화장터로 유명한 마니카르니카 가트는 번, 또는 버닝 가트라고도 한다.
죽은 사람의 시체를 화장하는 풍습은, 베다 시대(3천5백 -3천년 전) 라고 불리우는 초기에 매장과 화장의 풍습이 병행하였으나 매장풍습은 초기에만 있었을 뿐 곧 화장이 보편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병사하거나 교통사고나 유아, 기타 횡사한 사람은 화장을 하지 않고 바로 강물에 띄워 수장을 한다고 한다.

마니카르니카 가트는 다사슈와메드 가트에서 10분 정도 북으로 걸어가면 나온다. 우리는 지난 우기 때 범람하며 쓸려 내려와 두텁게 쌓인 시커먼 뻘 위를 조심스레 걸어갔다. 엄청난 압력의 폭포수 같은 펌프 물로 흙 뻘을 쓸어내고 있는 중이어서 굉장히 미끄러웠다. 잘못하면 강물까지 미끄러져 빠질 것이다. 우리는 힌두교도가 아니어서 그런지 옷 입은 채 강물에 들어가기는 싫었다.
건물들의 기초가 되고 조금 여분으로 남아있는 기단 층으로, 마치 암벽 등반을 하듯 조심스레 벽에 붙어서 지나갔다. 이곳을 지나니 소 떼 십 수 마리가 바닥에 똥과 오물 범벅을 하고 진을 치고 앉아 있으면서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사이로 왕 파리들이 마구 날라 다니고 있다. 우리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화장터에 간다는 기대감으로 조심조심 소들 사이로 지나갔다.

     하루종일 화장이 진행되는
     버닝 가트.
     화장터에서는 사진 촬영이
     곤란하므로   보트 놀이할 때 찰칵 !

길지는 않았지만 몇 겹의 고행의 길을 지나 드디어 화장터에 다달았다. 24시간 하루종일 화장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시체들과 장작 타는 냄새와 연기가 주위에 가득하다. 대나무 들것 위에 흰 천으로 둘둘 말려서 실려온 시체들은 강에 한번 적셔지고 난 뒤 장작더미에서 태워진다.
화장하는 모습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부근의 3층 건물 뒷편이 흙 언덕으로 이어져 옥상으로 통하게 되어있는 곳으로 갔다. 올라가는 도중에 건물 옆구리 조금 튀어나온 곳에 시체 두 구가 헝겁에 말려 있어 우리 머리와 박치기할 뻔도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 탓인지 무섭다거나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불어와 불타고 있는 송장의 검은 재들이 옷은 물론 얼굴과 머리카락에 다닥다닥 달라붙어서, 아빠가 모자를 벗어 털어 주었다. 만약 엄마가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 질색을 했을 것이다.

옥상에도 아래와 마찬가지로 둥그렇게 화장을 한 검은 자국들과 현재 화장이 진행 중인 곳도 있어, 장작의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사이로 지나가야 했다. 한 곳은 반쪽이 튀겨 나간 검은 바가지 같은 것이 타고 있었는데 그 속에 허연 골 같은 것이 김을 뿜으며 오그라들고 있어, 아빠가 굵고 긴 막대기를 들고 서 있는 화장꾼에게 저게 머리 부분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옥상 난간에 나란히 팔을 괴고 아래서 진행되는 화장 광경을 구경했다. 간간이 바람을 타고 냄새와 연기 그리고 잿 가루가 우리에게 날라왔다. 시체 앞에서 곡을 하며 우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황색 천으로 치장이 된 들것 위에 놓여있는 것, 아직 불을 붙이지 않아 장작 가운데 허옇게 놓여있는 것, 장작이 모자라서 타다 말고 밖으로 쳐져 내려와 김을 내며 미이라처럼 있는 것, 한창 불이 붙어 둘러싼 천은 타서 없어지고 이제는 검게 된 사람 형체에 불이 붙고 있는 것 등이 있다. 그리고 타고 남은 찌꺼기를 강에 뿌리는 사람들과, 다른 한편에는 싸여있는 화장용 나무와 장작을 싣고 온 배들로 붐비고 있다.

우리 뒤에서 화장 중인 곳은 점잖게 생긴 중년의 아저씨 다섯 명이 슬픈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한 사람이 장작더미 속을 손으로 가르치자 화장꾼은 긴 막대기를 쿡쿡 찔러 넣어 숯이 된 시체덩이가 골고루 잘 타도록 돌려놓는다.

아빠는 화장하는 광경을 자세히 잘 보라고 했는데, 왜 어린 딸들에게 이런 모습들을 유심히 보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우리는 아빠 말씀이 아니어도, 잘나고 못난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놓아둔 채 세상을 떠나, 불 속에서 형체를 잃고, 육신은 재로 가고 영혼은 연기와 더불어 허공 속으로 덧없이 사라져 가는 모습들을 주의를 기울여 똑똑히 보고 있는 중이었다.

오전에 숙소 바로 아래 계단을 내려가서 작은 배를 타고 남쪽인 하누만 사원과 나그와 가트까지 가서 다시 북으로 화장터를 지나 판츠 강가 가트라는 곳까지 다녀왔다. 배를 타고 강가를 보는 경관도 상당히 볼만하다.
가트의 대부분은 18세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그 중에는 자이프르나 우다이프르, 바라나시 등 부유했던 여러 힌두 왕조의 맥을 이은 마하라자(소 왕국의 왕)들이 각자의 저택을 조성하여 만든 가트들도 있다. 이들이 만든 가트는 중세 분위기가 풍기는 멋있고 아름다운 그들의 궁전과 어우러져 있어 독특한 정취를 풍긴다. 강물이 불었을 때 흘렀던 자국이 2-30m 위의 건물들 기단 부분에 거므스름한 자국으로 남겨져 건물마다 수평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여름 우기에 범람하듯 집들 사이로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은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작은 왕국의 왕들이
     각자의 저택을 조성하여 만든
     가트

강가 한 곳에는 검은 수염이 무성하고 위아래 흰옷을 입은 십 수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켜놓고 흰 우유를 부어가면서 의식을 치르는 곳이 있다. 가트에서 목욕하는 사람은 물론 모여 앉아 빨래를 하는 사람들과 길다란 하나의 천을 T자 모양으로 감아 묶어 팬티로 착용한 사람들은 강물에 들어가서 가트 바닥에 빨래 감을 도리깨질하듯 과격하게 휘둘러 치면서 땟물을 빼고 있었는데, 빨래 감이 하도 거칠게 다뤄져 가여운 것 같고, 왜 주위사람들에게 물을 튀겨가며 저렇게 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위에도 불구하고 검게 벗은 몸에 터번 만큼은 다들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갠지스 강가에서
     목욕은 못할 망정
     손이라도 담궈 보자.
    깊이 담그려다가 균형을 잃어
    강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앞으로 화가가 되어
     좋은 그림을 그릴
     내 오른손도
     성스런 강물에 넣어본다.

강물은 연두 색 계통에 약간 검은 기운이 도는 이중적인 색을 띠었다. 아빠는 여기까지 와서 목욕은 못해볼 망정 손이라도 강물에 담궈 보라고 했는데, 듣던 것과는 달리 별로 차지가 않았다. 손 옆으로 노란 꽃, 빨간 꽃, 예쁜 꽃들이 물결 따라 너울너울 흘러가고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물거품이 더 세게 일어나도록 손을 깊게 담그라고 하는 바람에 균형을 잃어, 강 가운데 깊은 곳에서 빠질 뻔했다. 아찔한 생각에 한동안 기분이 찝찝 했으나, 얼마 안 가서 상한 기분은 강물을 따라 흘러갔다.

진경이는 모기에 물려 퉁퉁 부은 눈으로 혹시 떠내려가는 사람 시체라도 볼까 하는 기대감에 두리번거렸는데 시체는 보지 못하고 죽은 황소가 커다랗고 허연 배를 드러낸 채 우리 곁을 떠내려가는 것만 보았다.

노를 젓던 사공은 마약 성분이 있는 베텔 잎 같은 것을 하얀 가루에 섞어 먹더니 강물을 손으로 떠 마시기도 한다. 여기 사람들은 강물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물로써 개의치 않고 그냥 마신다. 혼잡한 시가지에서 발생하는 온갖 잡탕 물이 흘러 들어오고, 동물과 어린아이, 떠돌이 수행자들의 시체들과 송장 태운 재들이 수없이 버려지고, 공업화되어 감에 따라 더욱더 오염되어 가는 갠지스 강은, 그러나 인도 인들에게는 변함없이 신성한 것이어서 목욕하고 마시는 데도 강물로 인한 병에는 걸리지 않는 것 같다.

화장터 시체들의 뼈 가루가 마구 뿌려지고 떠내려가는 조금 아래에서는 할머니들과 중년의 여자들이 모여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아름다운 탑 하나가 지반의 침식으로 물에 잠겨 기울어져 있었는데, 이런 정도라면 상당히 귀중한 문화재일 것 같은데도 강물 속에 방치되어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우리는 강변의 이런 저런 모습들을 보며 두 시간 가까이 강물 위를 떠다녔다.

좁은 길의 작은 상점들에는 장난감과 옷, 식품, 놋그릇, 물통, 수건, 공예품, 목걸이, 팔지 등 없는 게 없다 할 정도로 종류가 다양한 것들이 많이 있다. 특히 악세사리들이 있는 곳은 보석처럼 예쁜 것들이 많았다.

한 상점에는 아주 예쁘고 고상한 팔찌가 있다. 한 조에 열 개나 되는 것이다. 빨간색의 인조 보석과 조그만 거울이 붙어 반짝거리는 팔찌가 우리 눈에 확 들어왔다. 우리는 너무 마음에 들어 85루피에 샀다. 원래는 95루피였는데, 안 산다고 가다가 다른 가게에서 비슷한 것을 물어보니 백 루피를 달라는 거다, 그래서 다시 가서 재롱을 좀 부렸더니 십 루피를 깎아준 것이다.
이런 중에도 들것에 시체를 울러 맨 사람들이 화장터를 향해 지나가는데 길이 좁아 우리들과 부딪치며 가기도 했다. 우리 나라 상여는 긴 행렬에 느릿느릿 이별의 슬픔을 자아 내며 가지만 여기는 들 것 귀퉁이를 네 사람만이 어깨에 울러 맨 채 무감각하고 빠른 걸음으로 마치 빨리 갖다 버리려는 것처럼 휙 - 하고 지나간다.

상점들은 하나 둘 불을 거두며 문을 닫는 중이고 우리는 좁고 복잡한 미로 같은 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오고 있었다. 길 앞 쪽에서 중학생쯤 되는 사내 애들 무리가 골목을 누비듯 떠들며 달려오더니,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웃으면서 뛰어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어제 강가에서 얼굴을 익혔던 오빠들이다. 어제, 가트에서 배를 탈 수 있도록 만든 부교 같은 곳에 한가로이 엿과 땅콩을 까먹으면서 강물을 바라보며 앉아 있을 때였다. 똘똘하게 생긴 사내 애들 일곱 명이 노를 저어오면서 배를 타라고 했다. 배 삯을 흥정하다가 배타는 것은 관두고, 우리 운동화와 자기네 신과 바꿔 신으면 좋겠다는 것에서부터 우리가 마음에 든다는 등 한동안 서로 잡담을 하면서 놀다가 돌아갔다. 그 애들 중 한명은 갈 때 손 키스를 보내어, 소름이 끼치고 닭살이 돋을 정도였지만 그냥 얘기하고 노는데는 재미가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다른 장소에서 불현듯 만나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서로 알아 볼 수 있고 반길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상점의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가고 있었는데 음료수를 많이 마셨는지 갑자기 쉬가 마려웠다. 아빠가 그러면 대충 빨리 구경하고 가자고 했지만 상황은 그게 아니라 너무 다급했다. 내 모습을 보고 분위기를 파악한 아빠와 진경이는 화장실 같은 곳을 찾아 이리저리 혼잡한 길을 급하게 걸어가고 나는 쩔쩔매며 코메디언 배삼룡 아저씨의 깽깽이 걸음걸이로 뒤따라갔다.
이곳 저곳 화장실이 있을 만한 건물안과 드디어는 아무 곳이나 노상 방뇨할 적당한 장소마저도 못 찾아 이제는 얼굴이 노래질 정도의 위기였는데, 건물한편이 약간 꺾어진 곳에 자전거가 서너 대 놓여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마침 등불이 없어 어두운 곳이 있었다. 나는 그래도 사람들이 있어서 망서렸는데 아빠와 진경이가 서서 가려주어 자전거 안쪽 구석으로 들어가「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곳은 있다」라는 속담을 생각하며 겨우 실례를 마쳤다. 아빠와 진경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이제는 날아 갈 것 같은 기분이지만 화장실을 찾아 바쁘게 헤매고 다닌 덕분에 숙소로 가는 길을 잃어버려 복잡한 길을 겨우 물어서 돌아왔다. 바자르(시장) 미로에는 군데군데 경찰 서너 명씩이 한 조가 되어 앉아 있다. 아득한 옛날부터 순례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곳이고, 관광객 또한 세계 각지에서 오다보니, 거기에 따라 재미를 보려는 불한당들도 생겨나기 마련이어서, 치안을 위해 곳곳에 이렇게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몇 해 전 두 명의 한국인 배낭족이 당한 예다. 그들은 이곳을 여행하다가 악당들의 친절에 속아 약을 탄 음료를 마신 후 깨어나 보니 한 사람은 여권을 비롯한 돈과 중요한 모든 것이 털려 없어 졌고 한 친구는 배낭이 내 팽개쳐진 채 증발 되 버렸다는 일이다. 또 어느 서양 여행자는 손의 지문과 얼굴이 뭉개져 있는 상태로 강가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한다.
사실 불행한 일을 당하고 강물에 던져지게 되면 그걸로 영원히 끝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사람이 갠지스 강물에 던져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증거 인멸은 물론 원인 자체가 없어져버리니 말이다.

아빠는 바라나시로 오는 열차에서 추위로 고생을 했는지 면으로 된 얇은 바지와 담요 대용으로 쓸, 어깨에 둘러 걸쳐 보온을 하는 숄을 구입했다. 그러면서 푸쉬카르에서 보았던 원색의 알록달록한 야한 바지 못산 것을 여태 아쉬워했다. 어느 포목점을 지날 때 검정과 보라색으로 된 아름다운 무늬의 사리가 하늘하늘 우리를 향해 춤을 추고 있었다. 여리고 고운 사리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빠져 한참을 구경하다가 결국 구입을 하고 말았다. 바라나시에서 생산된 사리는, 아득한 옛날 왕자 시절의 부처님이 부귀영화를 누릴 때도 입었던 만큼 품질이 우수하고 귀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이다.
나흘간을 머물렀지만 편하고 아늑하기만 하다. 오후 9시 40분 열차로 싸트나를 경유해 카주라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 하루도「어머니의 강 갠지스」와 함께 할 수 있다. 밝지만 그늘이 진 테라스 나무 의자에 앉아 배낭을 정리했다. 어두운 방안 보다 여기가 좋다. 숙소 아래는 바로 강이다. 바람이 없어서 인지 화장터의 송장 타는 냄새와 연기가 낮게 드리워져 강과 가트를 따라지어진 집들의 구석구석에 잠겨온다. 공기 속에는 죽은 사람의 영혼들이 풀어져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숙소와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화장터의 냄새에 이제 익숙해져 있다.

강가 후지 레스토랑은 일본어로도 간판이 써 있어 전부터 지나치면서 느낌이 있었던 곳인데 언니들이 라이브 음악을 들려주는 곳이라고 소개를 해서 바라나시를 떠나는 마지막 날 점심과 저녁식사를 그곳에서 하게 되었다. 우리는 로스치킨과 베지터불 라면을 먹었다. 베지터블 라면은 우리 나라 면발 보다 약간 굵은 것에다가 된장과 함께 끓여서 나온다. 된장국물이어서 그런지 시원 시원 잘 넘어간다. 로스치킨은 두 시간 가까이 되서야 나왔는데 아마 큰놈으로 골라잡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렸는지 양이 굉장히 많다.

저녁의 분위기는 여러 나라의 여행자들이 많아 상당히 알록달록 하다. 두 명의 민속 음악가가 입구에 있는, 위 아래 복 층으로 나눠지는 층계 쪽 무대에서 연주를 했다. 오늘 음악은 깊이는 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느리고 북소리도 재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