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delhi/ india

우리는 델리로 가기 위해 다시 이드가 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정거장 앞 사거리 가까운 곳에 다다르니 경찰들이 쭈-악 깔리면서 교통이 통제되어 도로가 막혀버렸다. 폭동 같은 것이 일어났나 싶어 염려가 되었으나 곧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그라 공항에 높으신 사람이 도착해서 우리가 온 길로 지나간다는 거다.
정거장은 가까운 맞은 편에 있고 우리가 멈추어 있는 오른 편 길로는 소통이 되고 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해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릭샤꾼을 탓하며 원망을 했다. 왜냐하면 오는 길에 릭샤를 멈춰가며 멀지 않은 훌륭한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가라고 약도까지 펼쳐 보이면서 소개를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몇 차례씩이나. 나중에는 그러고 싶지 않으니 빨리 가자고 큰소리로 성화를 내기도 했다. 그 릭샤꾼은 참 I.Q가 안 좋으신 분 같다. 딴청부리지 않고 조금만 빨리 왔더라면 자신도 나쁘지 않았을 터인데, 하여간 그는 미안했던지 아무 말 하지 않고 우리의 불평을 수긍하는 태도로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렇다고 무한정 기다릴 수도 없어 우리는 릭샤에서 내려 비좁은 사람들 틈과 차들이 서 있는 사이로 살살 가다가 재빨리 차도를 가로질러 건너갔다.

정거장 앞에서 달걀과 간식을 산 후 델리행 버스에 올랐다. 정거장을 떠날 때까지도 저쪽 사거리 방향은 교통 해제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 그런 일쯤이야 상관없는 일이 된 것이고, 우리는 안도감과 함께 달걀 껍질을 벗긴 후 양념 소금에 톡톡 찍어 맛있게 먹었다.

분주한 시골장터 같은 중간 휴게소에서 차이를 마시고 비스켓도 샀는데 한국 과자처럼 맛이 있어서 몇 개를 더 샀다. 짜이짜이- 하면서 파는「차이」는 홍차와 우유 설탕 등을 넣어 끓인 후 걸러서 먹는 인도 전통차이다. 갈증과 피로회복 그리고 건강에도 아주 좋은 영양 차로서, 우리는 여행기간 내내 틈틈이 인도 사람들 틈에 끼여 음료수로 이용했다.

　밤 8시가 넘어서 올드 델리의 장거리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내리기 전 사람들이 분주히 다니는 곳에, 말랐지만 건장한 체격의 젊은 사람이 땅바닥에 손을 짚어 네발로 걸어가고 있다. 마치 커다란 고릴라처럼 부드럽고 빠른 몸 동작이어서 놀라웠지만, 인도 사람들은 별로 이상하지도 않은 듯 바라보지도 않는다.

우리는 곧바로 뉴델리 역 부근에 있는 파하르간지 중심거리인 메인 바자르로 왔다. 이 동네는 교통과 쇼핑이 편리하고 요금이 싼 숙소가 많아서 항상 배낭 여행객들이 들끓고 활기에 넘치는 곳이다. 메인 바자르 안의 차와 야채 등을 파는 부근에 있는「골든 까페」에 들러서 푸슈카르에서 만났던 「형숙·지연언니」의 메모를 받았다. 언니들과는 델리 역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만약을 위하여 2차 장소를 정해 연락하기로 했던 것이다. 원래 아그라에서 바로 바라나시로 갈 예정이었으나 푸슈카르에서 언니들을 만난 뒤, 아빠가 우리를 위해 일정을 약간 바꾸었다. 왜냐하면 아빠하고만 여행을 하면 좀 단조롭고 외로울까 봐서 변화를 주고 싶어서 였다.

언니들과 만난 인연을 얘기하자면, 진경이의 공이 크다고 하겠다. 우리가 푸슈카르의 성스런 호수 가에서 뜨거운 태양을 피해 한적한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을 때, 얼굴이 까맣게 탄 동양여자 두 사람이 층계로 된 가트 가운데 쪽으로 와서 앉았다. 그 모습에서 상당한 여행 관록이 붙어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겠거니 하고 이내 지나쳐 잊었다.

서쪽 하늘에 석양이 기울어 가고, 호수 건너편에서부터 황혼을 맞이하는 북소리가 들려올 때, 아빠와 우리는 호수 가에 비치는 노을을 보기 위해 가트 중앙으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아까 두 사람은 여태 그 자리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거였다. 부지런한 진경이가 호기심이 발동했던지 두 사람 가까이 가서 얼쩡거렸다. 그러더니 달려와서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거다. 그래서 아빠가 내려가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언니들은 자이살메르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사파리 여행을 마치고 오는 길이였고, 우리는 자이살메르로 떠날 예정이었기에 여행 정보도 얻기 위해 언니들의 숙소에도 들러 과일도 먹고 나중엔 나가서 저녁식사도 함께 했다. 이렇게 해서 언니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체격이 좋은 형숙 언니는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었는데, 우리 나라에 불어닥친 I.M.F 한파로 직장을 그만 두고 여행을 떠나 온지 4개월이 되고, 구정을 집에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 인도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지연 언니는 대학교 1학년생이고, 아르바이트로 여행비용을 장만해 인도로 온지 3개월이 되는, 그야말로 아주 용감 무쌍한「바람의 딸들」인데, 스치고 만나고 헤어지는 여행 도중에 서로 마음이 맞아 한동안 같이 다니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 날 밤 11시 넘어 우리는 자이살메르로 떠나 언니들과 헤어졌다. 그리고 우리가 아그라로 가서 떠날 즈음, 언니들은 델리에 머물 예정이었기에 우리가 델리로 갈 경우 만나자고 했던 것이다. 역시나 흥미로운 것은 몇 달 전 내(진아) 꿈에 언니들의 모습이 보였고, 갖고 다니는 책들도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것들이었다.

언니들은 호텔 나브랑에 머물고 있었는데, 까페의 주인 아저씨는 나브랑에 가지 말고 링고라는 좋은 호텔이 있으니 거기로 숙소를 정하라고「나브랑 노-굳, 링고 최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걸걸한 목소리로 외쳐대었다. 우리는 나브랑에 머물려는 것이 아니라 만날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카운터에 앉은 주인 아저씨는 재미 삼아 한참 「나브랑 노-굳, 링고 굳」을 외쳐, 우리에게 메모를 건네준 핸섬하게 생긴 종업원 오빠하고 한동안 깔깔거리고 웃었다.

　나브랑 호텔은 골목을 몇 구비 돌아가서 있었는데 回자 모양으로 된 건물로 가운데 마당을 빙 둘러 아래층에서 5층까지 뻥 뚫려 비어있고 여행자들의 빨래들이 어지럽게 층마다 널려 있다. 언니들은 1층에 머물고 있었지만 문이 잠겨 있다. 우리도 여기서 머물기로 하고 맞은편 방으로 숙소를 정했는데 침대도 한쪽은 주저앉고 별로 깨끗하지가 않았다. 아빠가 3층엔 깨끗한 방이 있으니 거기로 가자고 했으나 우리는 언니들하고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에 누추한 것은 개의치 않고 이 방에 있고 싶다고 했다.
짐을 풀고 카운터로 나오니 30대 초반의 동양인 아저씨가 윗 층으로 올라가고 있어,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일본 인인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

　다시 골든 까페로 가서 저녁으로, 차이 큰 주전자 하나와 치킨라이스 두개, 찹수이 하나를 시켰는데 「딕」이라는 종업원 오빠가 세 개는 양이 많으니 치킨라이스와 찹수이 각각 하나씩을 시키고 만일 모자라면 나중에 더 시키라고 해서 고맙고 친근감이 느껴졌다.

음식이 나온 것을 보니 정말 푸짐하였다. 치킨 라이스는 볶음밥 비슷했는데, 우리는 찹수이가 맛있어서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하나 더 주문해서 먹었다.
찹수이는 라면 같은 것을 탕수육 식으로 야채를 넣어 볶아서 만든 것이다. 달콤하고·고소하고·찌개 맛도 나는 것이 여간 우리의 구미에 맞는 것이 아니다. 그 동안 라면생각이 간절했는데, 우리가 한국 소녀들인 줄 알고 찹수이를 권해 준 종업원 오빠가 고마웠다.

「골든 까페」는 생각보다 작았으나 동양인과 서양인 그리고 아프리카 사람들도 모이는, 분위기가 괜찮은 가게였다. 여기 카운터 입구에 T.V가 있는데 뭄바이에서 본 영화 솔져의 춤추는 장면이 한창 방영되고 있다. 솔져가 인기가 아주 좋은 모양이다. 왜냐하면 지나가는 곳마다 솔져 영화 노래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까페에 들어갔을 때는 좌석이 없어 우람한 체구의 아프리카 인과 함께 식탁에 마주보고 앉았는데, 이런 일은 또 난생 처음이다. 그는 보기와는 달리 마음씨가 양순한 사람 같았고 권투선수 같은 큰 주먹 속에 가냘픈 포크를 꾹 쥔 모습이 익살스러웠다. 음식들도 쟁반에 흩어 놓은 채 푸짐하게 남겨놓고는 우리를 보고 씩- 웃으며 나갔다. 뒷 좌석에는 왠 서양언니 한 사람이 술에 취해 흥에 겨워 일행들 앞에서 노래도 부르며 여기저기 마구 손짓을 해대며 한참 수다를 떨고 있었고, 통로를 옆으로 한 좌석에는 동양인 방랑자들이 음식을 앞에 놓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벽에는 몇 개의 조그만 메모와 함께, A4 용지에 몇 일 전 메인 바자르에서 실종된 일본인 청년 모습을 사연과 함께 실어 찾고 있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사라졌으니 그 부모 형제들이 얼마나 가슴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메인 바자르에서는 여행 객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하는데, 아빠는 우리를 잃어버리거나 하지는 않으시겠지 하면서 약간 긴장된 마음을 풀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왔으나 언니들의 방문은 아직도 잠겨있다. 카운터 쪽 의자에 아까 마주친 젊은 아저씨가 앉아 있었는데, 아빠와 인사를 나누자 그가 우리 나라 사람인 것을 알았다. 그 아저씨도 우리가 한국인인가 싶어 궁금했는데 아빠를 보고 일본 인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1년간의 인도 여행 중이었고 내일 집으로 간다고 하는데 그 동안 한국 말을 안 해서인지 인사말도 더듬더듬 했으나 곧 혀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딸들과 함께 여행하는 아빠를 너무 부러워하면서 다음에 올 때는 꼭 조카를 데리고 와야겠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이스크림 가게와 입에 맞을 만한 음식점도 소개해 주었다.

골든 까페와는 다른 편 길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는 정말 갖가지 종류의 아이스 크림 사진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아메다바드에서 맛본 이 후 줄 곳 못 먹었는데, 그러나 배가 불러서 간단한 것으로 골랐다. 가게 안에는 주로 인도 사람들과 우리 또래의 사내아이 둘이 옆 좌석에서 음식을 먹고 있다. 그 애들은 흰 피부에 깨끗하고 아주 똘똘하게 생겼는데 우리말도 잘 들어주고 명랑한 성격에 몸이 빠른, 아주 쾌활한 아이들이다. 주인에게 무얼 물으면 음식을 먹다가도 대신 재빨리 대답해주기도 하는데, 식사가 끝나자 또 부리나케 뛰어나가는 품이 산만스럽다거나 정신없는 것하고는 좀 달랐다. 신통해서 사람들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주인 집 조카라고 한다. 어쨌던 길에서 주로 보는 인도아이들하고는 좀 색다른 아이들인 것 같다.

가게를 나와 메인바자르를 왔다갔다 하면서 구경을 하며 바람을 쐬자 하나 둘씩 매점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열 시가 넘어가고, 언니들과 역에서 만날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다. 우리가 만약 아그라에서 델리로 오게 된다면 오늘 밤 10시 25분에 도착하는 기차로 오는 것으로 해서 언니들이 마중 나오기로 푸슈카르에서 약속을 해 놓았는데, 우리는 기차표 예약할 좌석이 없어서 버스로 미리 온 것이다. 큰 도시 기차 역은 컴퓨터시스템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이프르 에서부터 예약을 하려고 했으나, 이미 동이 난 상태였다. 델리는 인도의 수도이기 때문에 기차로 상경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가 보다.

델리 역에서 형숙 언니와 지연언니를 만나고 지연언니의 친구 승래 오빠도 처음 만나 반가워했다. 언니들하고 오빠는 저녁을 먹지 않아서 골든 까페에 다시 가 저녁을 먹고 우리 가족은 차를 마시며 푸슈카르에서 헤어진 후 이 때까지의 재미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아까 술이 취해 수다를 떨던 서양언니는 아직도 있었는데 지금은 노래를 부르며 흥겨워하고 있다. 사람들 얘기로는 저 언니가 거지들에게도 밥도 사주고 좋은 일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별로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바뀌어 괜찮아 보였다.

언니들 방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었는데 아까 만난 3층에 묶는 젊은 아저씨도 불렀다. 지연언니, 승래 오빠, 젊은 아저씨는 내일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니까 축하해주고, 우리 가족과 형숙 언니는 남은 여행 잘하자는 의미로 맥주도 마시고 과일도 깎아 먹고 아직 남아있는 쥐포 조림도 먹었다. 지연언니는 우리가 귀국해 만나게 되면 떡볶이를 사준다고 했다. 떡볶이가 제일 먹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여행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며 시간을 보내니까 기분도 좋고 재미있어 밤 1시가 되는 줄도 몰랐다. 내일 바라나시로 갈 때 형숙 언니와 같이 가게 되는데 마음이 설레고 한국 가서도 언니들을 많이많이 봤으면 하는 바램이 일어나는 것을 보니 역시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끼리 만나면 서로 반갑고 좋은가 보다.

밤 1시가 넘어서 잤는데도 언니들을 만나서 좋다는 설레임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아 여행 와서 처음으로 일찍 일어났다. 아빠가 저번처럼 아프면 안 되니까 더 자라고 했지만 정신이 똘똘했다. 둘러보니 역시 방이 더러워 보였다. 아빠가 어제 3층에 보신 방은 깨끗하고 샤워실도 딸려있다고 했는데 언니들 생각에 그런 것 마음에 둘 여지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요를 개고 짐들을 정리한 후 세수할 때 지연언니가 뜨거운 물을 받아 우리얼굴을 깨끗이 씻겨 줬다. 이렇게 얼굴을 씻기고 있으니 어릴 때 생각이 난다.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세수를 하지만 찬물보다 역시 뜨거운 물이 피부에 좋은가 보다. 아빠가 우리 얼굴을 보자, 인도 사람처럼 피부가 검어지고 있더니 하얗게 반질반질 윤이 난다고 하며 웃었다.

역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바라나시로 가기 위해 예매를 하려 했으나 좌석이 이미 다 차서, 무굴사리로 간 후 거기서 버스로 가기로 했다. 역에 예매를 하고 있으니 어제 저녁 파티에 있던 사람이 다 모였다. 그래서 코노트플레이스에 새로 생긴 맥도널드로 가서 햄버거와 애플파이 그리고 감자튀김 아이스 크림, 주스 등을 푸짐하게 주문했다.

최근에 생긴 맥도널드는 코노트플레이스에서 명물이 되가는 것 같다. 선전을 얼마나 하는지 마치 국경일에 태극기를 가로에 꽂아두는 것처럼 거리마다 빽빽하게 맥도널드 기를 꽂았는데, 정말 음식점 가게 선전을 이렇게 해도 괜찮은가 생각될 정도다. 아마 뉴델리 시의 굉장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인 것 같다. 도어맨이 뭄바이서와 마찬가지로 문을 여닫아주고 있어 마치 귀빈 대접을 받는 것 같고, 손님들도 많아 매우 붐비고 안의 실내장식도 아주 깨끗한 복 층으로 된 집이다.

이곳에서 한국 남자대학생 중에서 최 연소인 키가 굉장히 크고 핸섬한 오빠도 만났는데, 이 오빠는 메인 바자르에서 또 새로운 일본인 실종자가 생겨 수소문하고 있는 중이더라는 것을 전해주었다. 우리 일행은 잠시 숙연했으나 곧 화제를 돌려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우리는 키 큰오빠와 함께 부근에 있는 영화관에서 「쿠치쿠치 호타하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제목의 뜻은 힌두어로 「내 마음속에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어요」라고 하는 아름답고 좋은 의미의 뜻이 된다. 이 영화는 먼저 본 솔저 보다 내용과 노래가 더 좋았다. 비디오 테잎까지 구입한 언니들이 적극적으로 추천해준 이유를 알 만했다.

하르라는 남자대학생과 티나, 그리고 안젤라라고 하는 여대생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친하게 지내다가 안젤라가 어디론가 떠나게 되고 나중에 하르와 티나는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티나는 딸 하나를 낳고 죽는다. 하르는 혼자 딸을 키우며 살다가 초등학생이 된 딸이 어느 발표회장에 가서 발표를 하기 위해 주제가 써 있는 종이 쪽지를 뽑게 되는데 그 쪽지에 써진 주제가 자기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딸은 죽은 엄마생각에 발표를 하지 못하고 흐느껴 울고 있는데, 아빠가 와서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대신 이야기 해 준다.
딸이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아빠는 선물꾸러미에 엄마가 옛날에 써놓은 친구 안젤라에 대한 편지도 넣어준다. 이제 어느 정도 컸으니 아마 엄마의 생각이 담겨있는 옛 글과 그 세계를 느껴보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정을 달래보라는 것인 것 같다. 그런데 일이 뜻밖의 방향으로 나아가 딸은 자기이름을 안젤라 라고 하고 싶어하고 나중엔 학교에서 가는 캠프장에서 엄마친구인 안젤라를 운명적으로 만나 서로 친하고 좋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는데, 안젤라는 약혼자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결혼식장에서, 축하하러 왔던 죽은 친구 티나의 남편 즉 옛날 셋이서 친했던 하르와 그 딸과 함께 약혼자를 놓아두고 떠나게 된다.

대강 줄거리는 이렇고, 인도 영화답게 당연히 춤과 음악도 곁들어져 있지만 세시간 삼 십분 동안 매우 슬프고 가슴이 뭉클해져 오는 내용들이었다. 더구나 우리는 엄마와 떨어져 있은 지가 20일이나 되기 때문에 코끝이 찡 - 하고 눈물이 나올 정도였는데 솔져에서 활약했던 개그맨 아저씨가 또 등장해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영화 「쿠치 쿠치 호타 하이·내 마음속에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어요」주인공 모습들

쿠치쿠치 호타하이를 보고서 코노트 플레이스를 따라 걸어 메인바자르로 돌아와 나브랑 호텔로 갔다. 젊은 아저씨와 지연언니, 승래 오빠는 이미 출국했고 키 큰오빠와는 카주라호에서 만나기로 하고 작별을 한 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형숙 언니와 함께 사과와 빵 쿠키 등 간식거리를 산 후 기차 역으로 갔다.

내일 무굴사리에 도착하기 전까지 춥지 않게 잠이나 잘 잤으면 좋겠다. 이번에 기차 여행하는 것까지 해서 세 번이지만, 침대에서 자는 것은 처음이어서 몸부림을 많이 치는 내가 굴러 떨어질까 봐 염려가 된다. 그래서 세 개의 침대 칸 중에 진경이가 위 칸, 나는 가운데 칸, 아빠는 맨 아래 칸에 자리를 잡고 형숙 언니는 맞은편 맨 위 칸에 자리를 잡았다. 침대에서 먹은 과자는 바삭바삭하고 맛이 있다. 인도 과자는 대체로 쿠키가 많은데 우리 나라 맛하고 거의 비슷해서 집에서 먹던 과자는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가차 안의 새벽은 추웠으나 견딜 만 했다. 침낭이 없이 그냥 옷을 입은 채로 누워 밤을 보낸 아빠는 누가 진경이를 주워 갈까 봐서, 내가 침대에서 떨어질세라, 그리고 추위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무굴사리는 때로 바라나시를 방문하기 위한 관문이 되기도 하는데, 바라나시와는 16Km 정도 떨어져있어, 미니버스나 오토릭샤보다 큰 합승 템포 등으로 연결되고 있다. 바라나시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하도 왕 고물이어서 출입구 문은 물론 창문도 제대로 없다. 버스 조수는 요금을 받는 틈틈이 문 틀을 위험스레 붙잡고 있어야 했다. 그나마 잘 달리는 덕분으로 찬바람이 마구 불어 들어왔다. 겨울 옷을 입었는데도 추워서 배낭으로 창문을 막아가며 견뎌냈다.

넓은 갠지스 강 위에 걸쳐진 마루비아교 에서는 교통체증으로 한 시간 이상 다리 위에서 머물렀다. 지루하게 기다리는 중에「이 다리는 성수대교처럼 부실하지는 않겠지?」하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 생각이 났느냐 하면 다리가 상당히 허름해 보였고 우리가 탄 버스 바로 곁으로 대나무 들것에 흔들거리는 시체를 울러 멘 사람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