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delhi/ india

티벳탄 캠프는 고향 잃은 티벳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1959년 중국에 무력으로 합병된 티베트 사람들은 망명객이 되어 약 보름에 걸쳐 히말리야를 넘어 북인도 몇 곳에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티벳 마을을「창프라」라고 하는데, 올드델리 지역의 장거리 버스터미널에서 3Km정도 거리에 있다. 우리는 기차로 내려서 이곳을 들른 후 델리로 들어가려고 한다.

기차는 북으로, 암리차르로 가는 것이다. 원래 우리는 시크교도의 성지인 암리차르로 갈 계획이 있었으나 일정관계로 델리에서 여행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시크교도의 총 본산이며 은은한 성가가 울려 퍼진다는 성스러운「황금사원」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욕심을 내자면 한이 없는 것이다.

새벽 4시30분에 델리 역에 내렸다. 풍채가 당당하고 점잖은 인품이 풍겨 나오는 자이나교인인 중년의 릭샤 왈라들이 네 명 있었다. 한 대의 릭샤에 네명이 몰려있고 릭샤 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근사한 생김새들이다. 그중 수염을 무성하게 기른 건장한 체격의 아저씨가 숄을 걸치더니 릭샤를 몰았다.
엔진의 굉음소리는 차가운 새벽공기를 갈갈이 찢는 듯 했다.
티벳탄 캠프에 도착하니 마을은 아직 깊은 잠에 들어있다. 우리 발걸음 소리에 놀란 개들이 사납게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에게 컹컹거리며 달려오는 개들도 있었지만 약간의 거리를 두고는 더 이상 다가오지는 않았다. 몇 군데 들른 후「시카」라는 길고 3층으로 된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우리가 들렀던 다른 호텔들의 종업원들은 새벽잠을 깬 모습들이었지만 다들 친절했다. 이른 새벽이었으므로 우리는 일단 밤 기차에서 못다 이룬 잠을 다시 청했고, 아빠는 새벽 산책을 나갔다.

티베트 마을의
여명

이곳으로도 야무나 강이 마을을 옆으로 끼고 고요히 흐르고 있다. 여기는 상류라서 그런지 늪과 뻘이 넓다. 검은 수풀 침대 위에서 잠을 깬 해님이 여린 면사포 같은 이불안개를 걷으며 부스스 일어나고,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강물은 거울 같은 수면으로 아침 단장을 하라는 듯 붉은 해님의 얼굴을 비춰주고 있다.

가게에 진열된 상품들에서나 이국적인 느낌이 들 뿐, 우리와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에 눈여겨보는 사람이나 물건 사라고 따라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우선 편했다. 우리는 크기는 하지만 내부가 산골 식당 같은 곳에서 차를 마셨다. 티벳탄 마을의 집들은 대체로 아파트 형식의 2, 3층 건물들이고 크고 깨끗했다. 집집마다 컬러 T.V가 켜져 있고, 차림세 등에서도 궁색한 기가 없어 보여 넉넉한 생활들을 하는 것 같다.

콩이나 밀기울 같은 것도 삶아 커다란 돗자리에 펼쳐놓은 광경들도 보여 우리 나라 도시의 변두리에 온 느낌이 들었다. 마을은 그다지 크지 않았으므로 오전 중으로 관광을 마치고 음악 가게에서「얄룽」의「사랑과 자유의 티벳탄 노래」테잎을 하나 구입했다. 원통형으로 만들어진 법륜은 특징이 있어서 갖고 싶었지만 부피 때문에 그만 두어야 했다. 마을을 나올 때 릭샤꾼도 우리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인 줄 알고 비용가지고 흥정하지 않게 처음부터 싸다고 생각되는 기본 요금을 말한다.

     티베트 마을의 아침 햇살.
    야무나 강 저편으로부터
    밝은 아침이 온다

델리는 인도의 수도로서 정치 중심이다. 델리의 정치 역사는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전설에 따르면 마하바라타 서사시에 나오는 영웅들인 판다바스들이 이미 3천년 전에 델리를 세웠고 그 이후로도 수세기 동안 인도 대륙의 중심부에 있으면서 사방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미쳤다.

12세기말부터 이슬람교도의 지배하에 들어가서 몇 차례 왕조가 바뀌고, 16세기 들어와 무굴 제국이 성립되었다. 아크바르 대제는 아그라를 왕도로 하였으나, 제 5대 샤자한이 다시 델리를 왕도로 정하고 붉은 성 랄 킬라와 자마 마스지드로 상징되는 성도로 만든다.
델리는 쇠퇴 일로를 걷던 무굴 제국을 대신해서 19세기 초 영국의 지배아래 놓이게 된다. 1911년 영국령 인도 제국의 수도가 캘커다로부터 델리로 옮겨지고, 시 남쪽에 뉴델리가 건설된다. 그리고 1947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뉴델리가 인도의 수도기능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델리는 무굴 제국의 수도였던 올드델리와 영국이 건설한 뉴델리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졌다. 무굴 제국의 샤자한이 세운 올드델리는 인도의 전통 도시다운 모습으로, 거리는 복잡하고 오래된 성과 모스크들 그리고 바자르들이 도시 전체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수도로서의 뉴델리는 영국이 만든 계획 도시이다. 코노트플레이스라는 원형의 공원을 중심으로 넓은 길과 현대식 건물로 이루어지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공원처럼 많은 숲이 둘러싸여 있다. 가로수가 무성한 깨끗한 길가에는 항공사나 고급식당들 옷 보석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알파벳으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는 코노트플레이스 중앙에서 A구역과 F구역사이 1번 라디얼 로드를 따라 약 4백 미터 가면 야자나무들이 잎을 늘어뜨리고 서 있는 공원에 잔타르만타르라는 천문대가 있다.

1724년 자이프르 왕이면서 천문학 광이기도 했던 자이 싱 2세가 무굴 황제 무함마드 샤의 후원을 받아 돌과 모르타르를 사용해 건축한 천문대이다. 이 천문대는 거대한 해시계도 있고, 삼각형 구조물의 계단을 올라가서 별을 관측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있는데, 과연 가파른 계단을 바로 올라가 별을 잡을 수 있는 기분이 들 것 같다. 난간도 없는 계단을 조심해서 올라 보니 7-8층 건물 높이 밖에 안되고 주위의 현대식 고층 건물들 때문에 이제는 높이로 본다면 맛이 갔다고 하겠다. 형태보존을 위해선지는 몰라도 전부 시멘트를 바르고 붉은 색과 흰색의 페인트칠을 해놓아, 유적으로 보기에는「전혀 아니올시다」이다.

그러나 미술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아주 괜찮은 조형미와 현대적 감각이 전해져 온다. 여기에는 단순화되고 주술적 느낌이 드는 형태로 된 커다란 해시계와 거대한 직삼각형으로 된 관측대, 기둥을 중심으로 30개의 뻗어나가는 빛 모양으로 된 둥근 건축물 등이 있다. 아기자기 하게 만든 통로와 계단 위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유적지에 가서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온 기분이다.

    인도의 왕 중 천재로
    불리었던 자이 싱 2세의
    작품 잔타르 만다르

별 따러 오르는
계단

     현대 조소작품을
     보는 것 같은
     천문대 조형물

코노트 플레이스는 영국의 조지 5세 왕의 형제 뻘 되는 코노트의 이름을 따 붙였다고 한다. 대 분수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안쪽으로 6구역까지 A-F 알파벳 순서로 나뉘어져 있고 바깥쪽으로도 G-N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방사형 길을 따라 많은 건물들과 상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메인 바자르나 우리 나라의 명동처럼 개방된 분위기같이 물건을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코노트 플레이스에는 여러 개의 극장이 있었다. 맥도널드 왼편으로 길을 건너는 극장에서「아프카니스탄으로 가는 급행열차」가 상영 중이다. 아빠가 재미있겠다며 보러 가자고 했다. 스릴과 액션이 넘쳐 나는 것으로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내용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순전히 유치한 연애 잡담물이었다. 포스터 그림엔, 달리는 열차와 근사한 눈빛의 총잡이들이 포옴을 잡고 있었는데 …. 나중에 알고 보니 급행열차는 전 시간 것이고 이번 것은 연애 물인 동시 상영관인 것이다. 실망이 컷지만 인도를 알자는 마음으로, 그림 구경하는 셈치고 그냥 앉아있었다. 아빠 옆에 앉은 한 청년은 영화 속에 완전히 빠져 있다. 내용을 지레 짐작하고 오금이 저려 쩔쩔매며 미리 죽어보자는 식으로 비명과 기묘한 소리의 웃음으로 옆에 있는 우리가 민망할 정도였다.

밤이 되어 숙소로 가는 길에 코카콜라 회사에서 코노트플레이스에 무대를 설치해 놓고 기념공연을 하는데 인도 가수들이 화려한 조명 아래 춤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 옆에 한 일곱 살 정도되는 남자애가 그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는데 너무나 잘 춘다. 고개 놀림에서부터 손과 팔을 틀며 돌리는 거라든가 허리와 힢, 그리고 발 놀림까지 아주 부드러워 자연스럽고 풀고 맺는 것도 깔끔했다. 꼬마가 추는 춤이 더 재미있다. 그 애는 나중에 커서 굉장한 댄서가 될 것 같다. 우리는 빗방울이 하나 둘 씩 떨어지기에 바쁜 걸음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어제 우리가 다시 델리로 왔을 때, 입맛이 익숙한 골든 까페에서 점심을 들고 마땅한 숙소가 없어, 전에 이 곳 주인이 소개한「링고 최고 !」라는 곳에 머물기로 했다. 최고까지는 아니어도 괜찮았다.

아빠는 우리가 자는 동안 아침 산보를 다녀오면서 항공사에 들러 비행기표도 갖고 오고, 계란과 사과도 아침 대용으로 사왔다. 그리고 하는 말씀이 어제 밤에 비가 많이 와서 메인 바자르 길이 아주 질퍽하다고 했다. 이곳은 비가 와서 진탕 길이 되면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진탕은 우리 나라 같은 진흙이 아니라 아스팔트길 위에 첩첩히 굳어있던 소똥이 풀어져서 철벅거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예 비가 많이 온다면 다 흘러가고 섬유질만 남기 때문에 차라리 그 위로 밟고 가는 것이 났다. 우리는 식당에 가지 않고 아빠가 사온 것으로 아침을 때웠다.

랄 킬라 성에 다녀오기 위해서 방문을 나섰다. 그사이 또 비가 와서 오물이 더 씻겨 나갔다. 날이 조금 개었는지 아빠는 아까보다 땅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가는 도중에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는 것이 또 비가 올 것만 같다. 그때 인디언 북 장수가 지나가서 팔백 루피에 준다는 타블라(작은 북)를 깍고 깍아 백 루피에 샀다. 가다가 비가 오면 북이 젖게 되니까 숙소에 두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몇 번 두드려 보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비와 우박이 마구 쏟아졌다. 숙소의 3층 옥상은 따로 문이 없는데 빗물과 조그만 얼음 조각들이 계단을 통해 마구 흘러 내려온다. 북만 아니었으면 우리는 지금쯤 비에 흠뻑 젖어 헤매는 가엾은 나그네가 되었을 것이다.

비가 조금 멈추어 골든 까페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형숙 언니가 델리로 오게 되면 연락이 되도록 메모를 써서 붙이려 하니까「링고 최고 !」라고 하던 뚱뚱한 주인 아저씨가 와서 벽에 붙여 주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메모지를 거꾸로 붙여 우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거꾸로 붙였다고 하니까, 아저씨도 웃으며「내가 한글을 알아야지-」하면서 다시 붙이는데, 이번에는 옆으로 붙인다. 우리는 웃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잠시 후 종업원인「딕」오빠가 나와서 메모의 위아래를 물어 보고 바로 붙여 주었다.

오빠에게 우리는 내일 집으로 간다고 하니, 입구에서 빙긋이 바라보고 손을 흔들며 한국말로「또 만나요 … 」했다. 딕 오빠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서운하다. 숙소에 다시 오니 또 하늘에서 슬픈 표정으로 소나기를 쏟아 붓는다. 하늘은 우리와의 이별이 아쉬워 눈을 껌뻑일 때마다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 동안 맑은 하늘 아래서 여행하도록 해준 하늘이 고마웠다.

속소에서 아빠는 북으로 신나게 장단을 두드렸고, 우리는 별 수없이 흥겹게 들었다. 몇 차례 비가 멎을 때마다 나갔으나 곧 들어와야 했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오후 늦게 비가 멎는 듯 하자, 또 오든 말든 일단 성으로 갔다. 숙소에만 있기는 갑갑했기 때문이다.

4시가 넘었다.
뉴델리 역의 좌측으로 조금 가면 구름다리가 나오는데 그 위에서 성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붉은 성을 뜻하는「랄 킬라」는 꼭 전설에 나오는 붉은 악마의 이름 같다. 이름 그대로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이 성은 샤자한에 의해 1639-48년에 건립되었다. 여러 겹으로 된 라호르 성채의 입구는 성벽 위 망루의 조그만 키오스크(이슬람 지역의 정자)들이 가뿐한 모습으로 놓여져 있어 아주 섬세하고 우아했다.

입구를 지나면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데 다양한 기념품 종류 중에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알라딘 램프」가 있는 가게였다. 램프는 정말 문지르기만 하면 좁은 입구에서 뭉게구름과 함께 거인 괴물이 나타나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줄 것만 같다. 요술 램프를 몇 차례 사려고 망설이다가 나올 때 사기로 했다. 붉은 성벽에는 부조로 꽃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넓은 뜰을 지나 하얀 궁전 몇 채가 있었다. 뜰과 마주한 곳에 예쁜 꽃무늬를 박아 넣은, 아름다운 곡선 모양의 수많은 기둥을 세워 공기가 잘 통하도록 만들어, 아케이드를 이룬 이 궁전에는 단순한 지붕 사각모서리에 각각 정자하나씩 얹어져 있다.

개인 알현실이라 해선지 겹겹으로 이어진 기둥들 안쪽 가운데 황제가 앉는 흰 대리석으로 된 옥좌가 놓여 있다. 옥좌를 향하는 정면의 대리석 기둥엔 오렌지색 비닐 끈이 사람의 발걸음을 제한한다는 요량으로 볼품없이 가로질러 묶여있다. 아름다운 꽃무늬들과 흰색의 수직 기둥을 잘살려 만든 건물들, 거대한 성채들을 보자면, 샤자한 황제는 부드럽고 섬세하며 그러면서도 웅대한 포부를 지닌 사람인 것 같다.
그가 사랑한 사람, 「왕궁의 보석」이라는 이름의 뭄 타지 마할 왕비가 떠오른다.

    랄 킬라
    델리의
    붉은 성

진주의 모스크라는 모티 마할은 알현실 왼편에 있는데 세 개의 돔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사각형 건물로 성안의 구조로 보아 균형이 맞지 않았다. 샤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 황제가 하루 다섯 번의 예배를 위해 자마마스지드까지 나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지었다는 개인용 사원이다.

아우랑제브는 마라타족의 시바지와 데칸 지역에서 오랜 세월동안 부딪쳐왔던 사람인데, 성품이 아주 검소하고 청빈한, 그러나 열성적인 무슬림이어서 수 없는 힌두 사원을 파괴하고 힌두인들을 못살게 군 황제이다.

연못이 있는 붉은 건물과 옆에 육중하고 고풍스런 박물관 같은 건물이 있었으나 성과는 어울리지 않아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 외는 그다지 내용물이 없어 보이는, 설렁한 성내 풍경들이었다. 옛날에는 궁전 안으로 연결된 수로로 맑은 물이 흐르고, 보석과 귀금속으로 장식되고 아름다운 휘장이 드리워져「지상에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다」라고 할 정도였다는 이 궁전들은 여러 번의 침략과 약탈로 내부가 횡뎅그레하게 되어버렸다 한다.

     랄 킬라 내부의
    알현실(오른쪽)과
    진주의 모스크
    모티 마할(왼쪽 건물)

1707년 아우랑제브 황제 사후,「왕좌에 앉을 것이냐 무덤에 누울 것이냐」고 할만큼 치열한 왕위 계승전이 전개되면서 제국의 운명은 내리막길을 달렸다.
1739년 페르시아의 나디르 샤는 델리를 침략하여 무굴의 안마당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타지마할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공작왕좌와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코이누르 등 엄청난 재물을 약탈하였다. 그 뒤를 이어 아프칸의 아메드 샤가 겨우 정신을 수습한 무굴에 또다시 일격을 가했다. 1761년 아프칸 왕국과 마라타 왕국이 무굴을 제껴놓고 델리 인근에서 한판 승부를 벌렸을 때도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강대했던 무굴 제국은 호통 한번 치지 못하고 그 싸움을 구경하는 처지가 되어, 왕년의 제국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겨우 델리 인근을 통치하는 작은 왕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랄 킬라 성문을 나오면 버스가 복잡하게 위 아래로 지나다니는 도로 넘어 바자르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이곳은 예로부터 델리의 중심 대로로 번영했고 지금도 중심이 되는 번화가이다.
릭샤가 분주히 지나다니는 길 양쪽으로 의류, 일용품, 식품 등을 파는 가게와 은세공 공방, 꽃 파는 상점과 책방 악세사리 수레점포 등으로 정신없이 복잡하다. 우리는 이 길을 조금 지나 좌측 길로 거대한 돔이 우뚝 솟아 보이는 자마마스지드로 갔다. 아까 까지만 해도 비가 왔기 때문에 길바닥이 질척한 곳과 물 웅덩이들이 많았다. 릭샤를 타고 가려고 여러 번 망서렸으나 비도 안 오고 「에이 여기까지 온걸 뭐 -」하며 걷다보니 모스크(이슬람 사원)까지 오게 되었다. 보기에는 가까운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복잡하고 먼 고행 길이다.

집권의 역사를 건축으로서 남겨보려고 했던 샤자한 황제는 지극한 신앙의 상징으로서 인도 대륙에서 가장 큰 모스크를 짓도록 명령하였다. 그의 최후 걸작이라고 일컫는 이 자마 마스지드는 1650-58년에 완성된 인도 최대의 모스크로, 거대한 랄 킬라의 붉은 성벽과 마찬가지로 장엄한 세 개의 돔과 높은 철탑으로 영화롭던 무굴 제국의 강렬한 이미지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거대한 돔과 첨탑이 우뚝 솟아,
     멀리서도 돋보이는
     자마 마스지드

질서 있게 오르내리도록 하얀 줄이 여럿 쳐져 있는 넓은 계단 위에는 파테프르시크리에 있는 모스크 정문과 비슷한 입구가 우뚝 솟아 있다. 이미 사방은 어두워졌고, 입구에는 아름다운 전등이 밤하늘을 배경으로 빛나고 있다. 관리인은 너무 늦어 입장이 안된다고 한다. 우리도 신을 벗는 일이 싫기 때문에 아쉬운 생각 없이 입구에서 짙은 남색의 하늘에 검은 모습으로 우뚝 솟아있는 모스크 안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무굴 제국의 영광이 서린「샤자 하나바드」라는 샤자한의 도시는 이슬람 세계 끝까지 그 명성을 떨쳐 나갔다. 그리고 오늘 밤도 맑게 씻긴 시가지의 불빛들은 그가 사랑했던 영롱한 보석들이 되어 아롱거린다.

어둠에 잠기는
찬드니 초우크와
자마 마스지드

자마 마스지드 정문에
어둠을 배경으로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등

8세기부터 시작된 인도에서의 힌두와 무슬림의 관계는 서로 다른 믿음과 종교적 실천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사이가 괜찮았다. 그러나 11세기 이후의 북 인도에 침입한 이슬람교도는 약탈, 방화, 파괴를 자행하였으며 힌두 및 불교 사원들을 돌무더기로 만들었다.

1206년 델리에 이슬람 왕조가 성립된 후 이제까지는 힌두 전통에 없던 이질적인 사상과 문화가 서서히 스며들어 힌두 전통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특히 무굴 왕조 시대(1526-1858), 그 중에서도 아크바르가 즉위한 16세기 후반 경부터 양 문화의 융합의 풍조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그러나 힌두는 언제나 무슬림이 물위에 뜬 기름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기억의 저편에 잠들어 있던 가즈나 왕조의 악랄했던 마흐무드와 힌두 사원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이슬람 사원을 건축한 여러 무슬림 통치자의 모습들도 아팠던 상처의 흔적으로 여전히 역사에 남아 있다.

종교적 관용정책을 쓰고 힌두인 라지푸트들과 결혼동맹을 맺은 아크바르 황제를 제외한 모든 무슬림 지배자는 야만적인 가해자로 기억이 되었다. 옛날의 평화롭던 인도의 힌두와 힌두교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무슬림의 출현과 함께 그들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힌두라는 말도 인도의 옛 이름 힌드에 사는 사람을 일컬었는데, 나중에 이슬람교를 믿지 안는 사람(비 무슬림) 모두를 구별해 힌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일체의 우상을 금지하는 이슬람교는 알라신 아래 모든 신도의 우애와 평등을 내세우지만 수많은 신을 숭배하는 힌두는 불평등 원리에 입각한 카스트란 계급 제도가 있다. 힌두는 소를 신성시하고 소고기를 먹지 않지만 무슬림은 소를 도살하고 소고기를 먹는다. 이는 힌두의 입장에서는 부정적이며 자기종교에 대해 모욕이다. 무슬림들이 메카를 향해 경건히 기도를 올리는 순간에도 힌두 사원에서는 춤과 노래, 엄청난 크기의 음악소리들이 사방에 울려 퍼진다. 인도에서는 종교가 삶을 지배한다. 온순한 사람도 종교적인 관습과 숭배장소를 지키기 위해 순식간에 극렬분자가 되기도 한다.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갈등들이 골을 이루어 정치적으로 비화되고 영국통치시절 그들의 분열 정책에 의하여 더욱 심화 된다. 결국 수 적으로 열세한 무슬림들이 밀려나, 천년간의 동거를 뒤로 한 채 파키스탄이라는 딴 나라를 세우고 갈라선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유일신을 믿는 무슬림은 다신교의 힌두들 속에서 편치 않은 삶을 꾸리고 있다. 종종 여행자들의 발길이 묶기고, 기피되는 잠무 카슈미르 지역이 두드러진 예다.

북인도가 아리안족의 힌두 문화와 이슬람 문화라면 데칸고원 아래인 남 인도는 드라비다 문화이다.
아리안들이 흰색피부를 지니고 있는데 반해 남쪽의 드라비다인들은 약간의 타밀족과 함께 검은 피부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힌두어를 아리안의 말이라는 이유로 배척하면서 영어와 드라비다어를 고수하고 있다. 인도 역사상, 무굴제국은 물론 마우리아, 쿠샨, 굽타 등 어느 제국도 데칸 이남을 다스린 적이 없다 한다. 자연적인 조건과 서로 다른 문화적 조건에 따른 남부인들의 격렬한 저항 때문이었다.

3천 5백년 전 이방인이었던 아리안족에 의해 밀려 내려온 원주민 드라비다인이 또 하나의 만만치 않은 세력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힌두인의 최고신인 시바 신도 사실 옛날 원주민들이 숭배하던 신 이였는데 아리안족에 받아들여져 그들의 신으로 모셔진 것이라 한다. 우리의 마음은 비현실적이지만 힌두와 무슬림이 서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
남부의 드라비다인들이 조용히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은 아래의 남부 민화에서 잘 정리되어 있다.

  우리는 인도라는 소의 앞과 뒤라고 할 수 있는 곳을 부분적이지만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즉 인도 남부를 가로지르는 데칸고원 북부 지역이다. 정말 이슬람 세계에서는 소머리와 뿔 같은 공격적일 수 있고 강하고 예민한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힌두 문화에서는 소의 뒤와 같이 두루뭉수리, 원만하고 넉넉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앞과 뒤는 몸으로부터 떼어 낼 수 없는 서로 한 몸이다.
  몸통은 인도의 영혼일 수도 있다.
  인도의 영혼은 인도의 종교에서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간디 할아버지의 말처럼, 각자 자기의 전통에 따라 힌두교인은 보다 훌륭한 힌두교인이 되고 무슬림은 보다 훌륭한 무슬림이 되면「종교는 인도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결속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오 백년 전, 영혼의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는 성자 카비르도 이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카스트를 넘어 평등의 나라로
     이슬람과 힌두를 초월해
     사랑으로 신에게 다가가자
     자, 인도인이여
     신으로 충만된 가슴을 갖자
     우리, 가슴을 태워 새로이 태어나자 !　

카비르가 죽었을 때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있었다. 제자들 가운데 힌두교도들은 그를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려고 했고 이슬람교도 제자들은 무슬림 식으로 매장을 하려고 하였다. 이럴 줄 알고 카비르는 미리 한 장의 유서를 남겨 놓았다.

「내가 죽고 난 다음 내 시체를 놓고 다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내 시신을 천으로 덮어놓고 기다려라.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유언대로 카비르의 시체는 천으로 덮여졌다. 그리고 힌두교도와 무슬림들은 각각 한 옆에서 기도를 했다. 얼마 후 시체 위에 덮여졌던 천이 벗겨졌을 때,

… 거기에는 몇 송이 고운 꽃들만 있을 뿐이었다.
힌두와 무슬림들은 각각 이 꽃을 나누어 가졌다 … .

우리는 인도의 모습은 이 정도로 이해하고 한여름 밤의 꿈같은 여정을 접어야 했다.
나마스떼 … !
당신의 영혼에 경의를 표합니다.

  밤이었다.
  아빠는 장구장단으로 타블라를 두드리고, 우리는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쓰고 있었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데
  일기장에는 눈물 방울이 「톡, 토독 !」 떨어졌다.　

똑, 똑, 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언니였다. 반갑고 고마운 형숙 언니 … .
그 뒤에는 정미언니와 재은 언니가 꿈처럼 서있었다. 골든 까페에서 우리들의 메모를 보고 지금 온 것이다. 갠지스 강가에서 우리와 헤어진 후 캘커다로 가지 않고 바라나시에서 다른 언니들과 같이 있다가 델리로 온 것이다. 정미언니는 감기기운이 있나 보다. 재은 언니를 또 만날 줄 알았으면 카주라호의 찬희 오빠에게서 글이라도 받아올 것을, 후회가 되었다. 언니들은 우리가 잘 때쯤 되어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고 옆 건물의 숙소로 갔다.
우리는 하늘이 또 눈물을 흘릴까봐 마음으로 달래주고 잠에 들었다.

  비행기 타고 서울에 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마치 비누방울을 타고 가도 될 만큼 기분이 가벼워 졌다.
  하늘도 눈물을 거두고 방긋 우리를 맞아주었다.
  처음에는 집에 안가고 인도에 계속 있고 싶었는데 여행 종착지인 델리에 오게 되니 마음이 확 바뀌어 버린 거다. 한국 가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엄마 뵙는 것, 명동 가서 노는 것, 떡볶이 먹는 것, 비디오 보는 것들인데 과연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울 간다는 것이 신기하다.

짐을 다 꾸리고 코노트프레이스로 왔다. 그리고 맥도널드에서 점심 시간을 보냈다. 일본인 같은 대학생 언니 둘이 표정들이 망가져 가지고 맥도널드에 있다. 여행이 힘드나 보다. 공항 버스 타는 곳에 갔더니 그 언니들이 거기에도 미리 와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 모습을 보니 여행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 같다. 나중에 우리 옆에 놓여져 있는 가방을 좀 달라기에 한국 사람인 줄을 알았다. 문 밖에 나가 담배를 꼬나 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우리와는 물이 다른 것 같다. 아빠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내 마음 속에 무언가 일어나고 있어요」 영화 음악 테이프를 샀다.
아빠는「자키르 후세인」의 싯타르와 타블라 연주 테잎을 샀다.

공항버스가 오자 귀국하는 친구들을 배웅 나왔던, 처음 보는 한국 오빠들이 우리들의 짐을 날라 주었다. 그리고 커다란 오랜지도 건네주었다.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는가보다. 우리는 배낭이 이미 단단하게 싸여져 있어서 아무 것도 줄 수가 없었다.
오빠들은 「안녕히 가세요」의 일본말인 「사요 나라 - 」를 약간 바꾸어 「사고나라 - , 사고나라 - !」라는 덕담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오빠들의 남은 여행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

   비행기가 달리다가 하늘로 떠올랐다.
  공항 주위의 풍경들이 사라지고 하늘만 보인다.
  서울까지 막힘 없이 하나로 펼쳐져 있는 하늘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늘 푸른 품 같다.
  그래서 하늘이라고 하는가 보다.